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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한성의 관청 위치에 대해 마무리합니다.
해당 관청에 대해 알아봅니다.
71. 서 활인서 • 한양의 빈민들 구제와 치료, 무의탁 환자를 수용하고, 전염병이 발생했을 때는 병막(病幕)을 가설하여 환자를 간호하며 음식과 의복·약 등을 배급하기도 하고, 또한 사망자가 있을 때는 매장까지 담당했던 관청 • 서울시 마포구 아현동 267-1
72. 균역청 • 1750년(영조 26) 균역법을 시행하면서 군포 징수 감소에 따른 부족한 재원을 군포로 징수하던 각 관청에 보충해 주기 위하여 어염선세, 은여결세, 결전 등에서 재원을 마련하고 이를 각 관청에 지급할 목적으로 1751년에 설치한 관청 • 서울시 중구 충무로 3가 60-1
73. 남학(남부 학당)
74. 남별영 • 군영(軍營)인 금위영의 분영(分營, 별도 군영) • 현재 서울시 중구 퇴계로 남산골 한옥 마을
75. 금창 • 금위영에 소속된 식량과 무기를 관리하던 창고
76. 남소영 • 한성의 남부 명철방 남소문 옆에 설치하였던 어영청(조선 후기 왕을 호위하기 위해 설치된 군대)의 분영. • 군사들의 주둔지이며 화약 등 각종 군기를 보관하는 창고의 역할을 담당
77. 신창 • 선혜청의 별창(別倉, 만리창)으로 이곳에 창고를 새로 지었다고 해서 신창(新倉) • 용산구 신창동 이름의 유래
78. 군자감 • 군사상에 필요한 물자를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관서(호조 소속) • 서울시 용산구 원효로 3가 1-2
79. 전생서 • 궁중의 제향(祭享) · 빈례(賓禮) · 사여(賜與)에 쓸 가축을 기르는 일을 맡았던 관서 • 서울시 용산구 후암동 370
80. 이태원 • 이태원(梨泰院)이란 역원(驛院, 조선시대에 일반 길손이 머물던 공영 숙소)에서 동명이 유래됨 • 이태원(異胎院)이라도고 하는데 일본, 청나라에 끌려갔던 조선 여인들이 임신해 돌아와 살던 곳이라고 해서 붙였다고 함 • 용산 기지는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는 일본, 미군 용산 기지를 반환했지만 아직 자유롭게 들어갈 수 없는 곳
81. 와서 • 궁궐 등을 조성하는 데 소용되는 기와 · 벽돌을 공급하기 위해 설치한 관서. • 용산 시티파크 101동 앞 도로변, 용산 철도 고교 건너편
82. 서빙고 • 동빙고(서울시 성동구 독서당로 40길 25)는 국가 제사용 얼음, 내빙고가 궁중 전용 얼음을 저장, 서빙고는 궁중, 문무백관 및 환자나 죄수들에게 나누어 줄 얼음까지 저장함 • 서울시 용산구 서빙고동 199-3
83. 한강진(漢江鎭) • 한성과 동래(부산)를 잇는 제1의 간선도로인 영남 대로(동래로)가 지나는 나루터 겸 군영 나루터, 그래서 나루터 진 津이 아닌 진압할 진 鎭을 씀
▼ 마무리하며
1. 한양 주변에 산재되어 있는 관청과 그 위치를 알아보려고 하였다. 조선 초기와 달리 대한 제국까지 오면서 조직이 통·폐합과 신설 및 명칭이 달라지는 것은 지금과 마찬가지다. 시대의 흐름과 업무의 필요성 및 효율성을 위해 변하는 것이다.
2. 관청은 ①궁궐 안 궐내 각사 ②한양도성 안 ③ 한양도성 밖(성저십리. 城底十里는 한양도성 주변 4km 이내 지역)으로 산재되어 있다.
3. 관청 명칭의 끝 글자를 보면 관청의 위상이나 성격을 알 수 있다.(예시)
| | 사(司) : 비변사 | 조(曹) : 이조 | 관(館) : 홍문관 | 각(閣) : 규장각 | 원(院) : 중추원 | 위(衛) : 장용위 | 영(營) : 금위영 | 청(廳) : 포도청 | 감(監) : 선공감 | 시(寺) : 군기시 | 서(署) : 조지서 | 소(所) : 기로소 | 학 : 남학 | 국(局) : 혜민국 | 부(部) : 동부 | 관(觀) : 서운관 | 전(殿) : 선원전 | 창(倉) : 광흥창 | 고(庫) : 서빙고 |
4. 조선시대 넓은 면적의 관청들은 대부분 현재 다른 용도로 바뀌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남별영 터는 수도 방위 사령부에서 남산골 한옥마을로 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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