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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품명 ― 와제(瓦製) 보살두상(菩薩頭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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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유래 ― 1934년 다 늦어 가는 어느 모추(暮秋)의 저녁, 어떠한 여인이 와서 고물(古物)을 하나 사라고 내민 것이 흙으로 만든 이 불상(佛像)이다. 몸은 없고 머리뿐이요, 머리도 원상(圓像)이 아니라 반육부조(半肉浮彫)다. 길이 이 촌 구 푼 오 리, 폭 이 촌 오 푼, 결발(結髮)의 솜씨, 안면(顔面)의 조법(彫法), 묻지 않아도 고려불(高麗佛)이다. 얻은 곳을 물으니, 개성부청(開城府廳) 앞 냇가 모래자갈돌 틈에서라고 한다. 즉 고려대의 앵계천(鸚溪川)이니, 이 냇가는 봉선사(奉先寺)·미륵사(彌勒寺)에서 흘러나와 수창궁(壽昌宮) 민천사지(旻天寺地)로 흘러 나가는 물이니 고려대 명찰(名刹)의 좌우 틈바구니에서 얻은 물건이다. “이십 전에 팔겠소?” 하니까 십 전만 더 달라기에 서슴지 않고 삼십 전을 주고 샀다. 이것이 나의 귀중한 보물이 되어 있으니, 그 이유는 얻은 자리가 명백한 고적(古蹟)에서라는 것보다도 그 조형식(造形式)의 기이함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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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저 고려의 불상을 쳐 놓고 큰 것은 조분(粗笨)에 흐르지 않는 것이 없고 소상(小像)은 섬약(織弱)에 흐르지 않는 것이 없다. 미술적으로 볼 만한 것은 실로 십지(十指)로 헤아릴 만하다. 그리하고 그 형식은 대개 신라대의 형식을 이어받고 다소 송(宋)·원(元)의 형식을 가미한 것이 통식(通式)이 되어 있다. 나마(喇嘛)의 영향을 받은 것도 물론 많아졌다. 그러나 눈의 표정이 한결같이 봉안(鳳眼)이라 하여 일자(一字)로 가늘고 긴 형식을 갖고 있는 것이 통식이 되어 있다. 그런데 이 보살상(菩薩像)의 눈은 삼각적(三角的)으로 크게 뜨고 있어 보살상으로 과도의 진에(瞋恚)의 표정을 하고 있다. 이러한 표정은 조선의 불상 중에서 보기 어려운 특색이요, 북만(北滿)의 요(遼)·금(金) 유지(遺地)에서나 얻어 볼 수 있는 형식이다. 그것을 나는 조선에서 얻어 가졌다. 실로 삼십 전으로 논지(論之)할 물건이 아니다. 요·금의 형식이라면 거란(契丹) 계통의 형식인데, 거란 계통의 형식이 고려조에 있게 된 것은 『고려도경(高麗圖經)』에 설명되어 있다. ”赤聞契丹降虜數萬人 其工伎十有一擇其精巧者 留於王府 比年器服益工 또 듣자니, 거란의 항복한 포로 수만 명 중 기술이 정교한 자 열 명 중에 한 명을 공장(工匠)으로 골라 왕부(王府)에 머무르게 하여, 요즈음 기명(器皿)과 복장이 더욱 공교해졌으나“ 운운이라 하였지만, 불상에서 거란 형식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마 이것을 두고는 다시 없을 것 같다. 오동갑(梧桐匣)에 솜으로 싸고 싸서 심심 하면 들여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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