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호남의 남원이라 허는 고을이 옛날 대방국(帶方國)이었다.
3
동으로 지리산 서로 적성강(赤城江), 남적강성허고 북통운암허니
4
곳곳이 금수강산이요 번화승지(繁華勝地)로구나
8
숙종대왕 즉위 초에 사또 자제 도령님 한 분이 계시되,
9
연광(年光))은 십 육 세요 이목이 청수 (淸秀))허고
10
거지현량(擧止賢良}허니 진세간(塵世間 ) 기남자(奇男子) 라.
11
하로난 일기 화창하야 사또 자제 도령님이 방자불러 분부허시되
13
내 너의 고을 내려 온지 수 삼삭(三朔)이 되었으나
14
놀기 좋은 경치를 몰랐으니, 어디 어디가 좋으냐?"
17
인제 공부하시는 도령님이 승지(勝地)는 찾아서 무엇허시려오?"
19
자고로 문장 호걸들이 승지 강산을 구경허고 대문장이 되었으니라.
23
"기산영수(箕山潁水)) 별건곤(別乾坤) , 소부(巢父) 허유(許由) 놀고
24
채석강 명월야(采石江明月夜)에 이적선(李敵仙)도 놀아 있고
25
적벽강 추야월(赤壁江秋夜月)의 소동파(蘇東坡) 도 놀고,
26
시상리 오류촌 도연명(陶淵明))도 놀아 있고,
27
상산(商山)의 바돌뒤던 사호(四皓))선생이 놀았으니,
29
동원도리(東園桃李) 편시춘(片時春) 아니 놀고 무엇허리.
32
"도령님 말씀이 그리 허옵시면 대강 아뢰옵지요.
34
서문 밖 나가오면 관왕묘를 모셔있어 만고영웅이 어제련 듯 허옵고,
35
북문 밖을 나가오면 교룡산성 대복암이 좋사오며,
36
남문밖을 나가오면 광한루 오작교 영주각이 삼남 제일루로소이다."
44
홍영자공,(紅纓紫鞏 :붉은 고삐와 재갈) 산호편(珊瑚鞭) , 옥안금천(玉鞍錦薦) , 황금륵(黃金勒) ,
45
청홍사 (靑紅絲)고운 굴레,상모 물려 덥벅 달아 앞뒤 걸쳐 질끈매,
46
칭칭 다래 은엽등자(銀葉鐙子) 호피(虎皮) 돋움이 좋다
47
도령님 호사 헐제, 신수 좋은 고운 얼굴, 분세수 정히 허고,
48
감태 같은 채진 머리, 동백기름 광을 올려,갑사 댕기 드려두고,
49
쌍문초(雙紋縮) 진동옷, 청중추막(靑中赤莫)을 바쳐,
50
분홍띠 눌러 띠고 만석 당혜를 좔좔 끌어, 방자 나귀를 붓들어라.
51
등자 딛고 선뜻 올라 통인방자 앞을 세고 남문 밖 나가실 제,
52
황학의 날개같은 쇄금 당선(彩錦唐扇) 좌르르 피어 일광을 가리우고,
53
관도성남(官道城南) 너룬 길, 호기있게 나가실 제,
54
봉황의 나난 티껼, 광풍 좇아 펄펄 날려,
55
도화점점 붉은 꽃 보보향풍(步步香風) 뚝떨어져,
56
쌍옥제번(雙玉溪邊) 네 발굽에 걸음걸음이 생향(生香)이라.
57
일단선풍(日團仙風) 도화색 위절도(魏節度) 적표마(赤驃馬)가 이에서 더하오며,
58
항장수 오추마(烏騅馬)가 이에서 더할소냐
61
도령님이 광한루에 올라서서 사면 경치를 바라보실 적에
64
녹수의 저문 봄은 화류동풍(花柳東風) 둘렀난디,
65
요헌기구하최외(瑤軒綺구構何崔嵬) 난 임고대(臨高臺)를 일러있고,
66
자각단루분조요(紫閣丹樓紛照耀)난 광한루를 이름이로구나.
69
견우성은 내가 되려니와 직녀성은 뉘라서 될고.
70
오날 이곳 화람중에 삼생연분 만나볼까.'
74
이애, 방자야 오늘같이 좋은 경치 중에 술이 없어 쓰것느냐!
76
방자가 술상을 드려놓으니 도령님이 좋아라고,
77
'이애, 방자야 오날 술은 상하동락허여 연치 찾아 먹을 터이니,
78
너희 둘 중에 누가 나이를 더 먹었느냐?'
80
아마도 저 후배사령이 낫살이나 더한 듯 하나이다.'
82
후배 사령 먹은 후의 방자도 한 잔 먹고,
83
도령님도 못 자시는 약주를 이렇듯 이삼 배 자셔노니,
88
장성일면용용수(長城一面溶溶水) 대야동두점점산(大野東頭點點山)
93
흰 '백'자 붉을 '홍'은 송이송이 꽃피우고,
94
붉을 '단' 푸를 '청'은 고물 고물이 단청이라.
95
유막황앵환우성(柳幕黃鶯喚友聲)은 벗 부르난 소리요,
96
황봉백접쌍쌍비(花草白蝶雙雙舞)난 향기를 찾는 거동이라.
97
물은 보니 은하수요, 산은 장관 옥경이라.
98
옥경이 분명허면 월궁항아(月宮姮娥) 없을소냐!
102
해도 같고 달도 같은 어여뿐 미인이 나온다.
103
저와 같은 계집 아이와 함께 그네를 뛰려 허고,
104
녹림 숲 속을 당도허여 휘늘어진 벽도가지 휘휘칭칭 잡어매고,
105
섬섬옥수를 번듯 들어 양 그네줄을 갈라쥐고 선뜻 올라 발구를 제,
106
한 번을 툭 구르니 앞이 번듯 높았고,
107
두 번을 툭 구르니 뒤가 번듯 솟았네.
108
난만도화 높은 가지 소소리쳐 툭툭차니,
109
춘풍취화낙홍설(春風吹花落紅雪()이요 행화습의난홍무(杏花襲衣亂紅舞)라.
110
그대로 올라가면 요지황모를 만나볼 듯,
111
입은 것은 비단이나 찬 노리개 알 수 없고 ,
112
오고간 그 자취 사람은 사람이나 분명한 선녀라.
113
봉을 타고 내려와 진루(秦樓)의 농옥(弄玉)인가
114
구름타고 올라간 양대의 무산선녀(巫山仙女),
115
어찌보면 훨씬 멀고 어찌보면 곧 가까와 들어갔다 나오는 양
116
연축비화낙무연(燕蹴飛花落舞筵), 도령님 심사가 산란허여
119
저 건너 녹림 숲 속에 울긋 불긋 오락가락 하는 게 저게 무엇이냐?"
121
소인 놈 눈에는 아무 것도 안보이오."
122
"네 이놈 이리 가까이와서 내 부채발로 보아라."
124
도련님 부채발은 말고요, 미륵님발로 보아도 안보이요."
126
"아, 금매 자시는 말고 축시에 보아도 안 뵈인단 말이오."
129
"아, 도련님 그것이 다른 것이 아니오라,
130
병든 솔갱이가 깃 다듬니라고 두 날개를 척 벌리고,
132
"네 이놈 내가 병든 솔갱이를 모르겠느냐?
134
"옳지 저어기 들어 간다 들어가 나온다 나와."
136
오늘 아침에 우리 숫당나귀 고삐를 길게 매 놨드니,
137
그 건네 암당나귀를 보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141
"아 금매 절구대 똑뜩 부질러도 안 보인단 말이오."
142
"그래, 그러면 내 눈에는 보이고 네 눈에는 안 보일진대,
143
내가 탐심이 없어 금이 화하여 보이는 게로구나."
144
"허허 도령님,아금출지 내역을 소인놈이 아뢸텡께 자세히 들어보시오,잉."
147
금은 옛날 초한적 육출기계(六出奇計) 진평(陳平 )이가 범아부(凡亞夫)를 잡으려고,
148
황금 사만금을 초군중에 흩었으니 금이 어히 되오리까?"
151
화분공산(火焚空山) 불이 붙어 옥석이 모다 다 탔으니,
155
명사십리가 아니거든 해당화 어히 있으오리까?"
158
대명천지 밝은 낮에 귀신이 어이 있으리까?"
160
"그럼 금도 옥도 귀신도 아니라면 저게 무엇이란 말이냐?
161
답답하여 못 살겠구나. 어서 건너가 보고 오너라."
163
웃양반을 너무나 속이는 것이 도리가 아니었다.
165
이 고을 퇴기 월매의 딸이라 하옵난디,
166
본시 제몸 도고허여 기생구실 마다허고,
169
오월 단오 일마다 여염집 아이들과 저 곳에 나와서
171
'이애, 그럼 그 기생의 딸이란 말이로구나?
176
'춘향의 설부화용(雪膚花容) 남방의 유명키,
177
장강(莊姜)의 색과 이두(李杜)의 문필과 태사(太사)의 화순심(和順心)과
178
이비(二妃)의 정열행을 흉중에 품어 있어,
180
만고여중(萬古女中)의 군자(君子)오니,
181
황송한 말씀으로 호래척거(呼來斥去)는 못하리다 .'
184
형산백옥(荊山白玉)과 여수황금(麗水黃金)이 물각유주(物各有主)라,
185
임자가 각각 있는 법이니 잔말 말고 빨리 불러 오도록 허여라."
188
방자, 분부 듣고 춘향 부르러 건너간다.
189
겅거러지고 맵씨있고 태도 고운 저 방자,
190
세속 없고 발랑거리고 우멍스런 저 방자,
191
서왕모(西王母)요지연(瑤池宴)의 편지전턴 청조(靑鳥)처럼
193
쇠털벙치 궁초 갓끈 맵씨있게 달아 써,
194
성천 동우주 접저고리, 삼숭버선, 육날신을 수지빌어 곱들매고,
196
한 발 여기 놓고 또 한 발 저기 놓고 충충 거리고 건너간다.
197
조약돌 덥석 집어 버들에 앉은 꾀꼬리 툭 처 휘여쳐 날려보고,
198
장송가지 툭 꺽어 죽장 삼어서 좌르르 끌어 이리저리 건너가,
199
춘향 추천허는 앞에 바드드드득 들어서 춘향을 부르되 건혼이 뜨게,
204
"허허, 아 나 사서삼경 다 읽어도 이런 쫄쫄이 문자 처음 듣겄네.
205
인제 열 대여섯 살 먹은 처녀가 뭣이 어쩌?
209
언제 우리 아씨가 낙태라드냐, 낙상이라고 했제."
211
향단이 너도 밥 잘먹고 잠 잘 잤더냐?
213
오늘 일기화창허여 사또 자제 도령님이 광한루 구경 나오셨다.
214
자네들 노는 거동을 보고 빨리 불러오라 허시니, 나와 같이 건너가세."
215
"아니, 엊그제 오신 도령님이 나를 어찌 알고 부르신단 말이냐?
216
네가 도령님 턱밑에 앉어 춘향이니 난행이니 기생이니 비생이니
217
종조리새 열씨 까듯, 시앙쥐 씨나락 까듯
220
"허허, 춘향이 글공부만 허는 줄 알았더니 욕공부도 담뿍 허였네, 그려.
221
아니 자네 욕은 고삿 이 훤 허시그려.
223
아니 내 처사가 뭐가 그르단 말이냐?"
228
계집아이 행실로, 여봐라 추천을 헐량이며는
230
남이 알까 모를까 허여 은근히 뛸 것이지,
232
광한루 머잖은 곳 녹음은 우거지고, 방초는 푸르러,
233
앞 내 버들은 청포장(靑布帳) 두르고,
235
한가지는 찢어지고 또 한가지는 늘어져,
238
외씨 같은 두발 맵씨는 백운간에 가 휫득, 홍상 자락은 펄렁,
246
여염집 아이로서 초면남자 전갈 듣고 따라가기 만무허니,
248
'여보게 춘향이, 오늘 이 기회가 시호시호 부재래라.
249
아, 낭군을 얻으려면 뚜렷한 서울 낭군을 얻지,
253
'그렇치야 인걸은 지령이라, 사람도 산세 따라 나는법이다.
258
경상도 산세는 산이 웅장허기로 사람이나면 정직허고,
259
전라도 산세는 산이 촉허기로 사람이 나면 재조있고 ,
260
충청도 산세는 산이 순순 허기로 사람이 나면 인정있고,
261
경기도로 올라 한양터보면 경운동 높고 백운산 떳다.
262
삼각산 세가지 북주가 되고, 삼각산이 떨어져 인왕산이 주산이요,
263
종남산이 안산인디 동작이 수구를 막기로.
264
사람이 나면 선할디 선하고 악하기로들면 별악지상(別惡之上)이라.
266
부원군 대감이 자기 외삼촌이요, 이조판서가 (同姓祖父)님이요,
269
내일 아침 조사 끝에 너의 노모를 잡어다,
271
주릿대 방맹이 굵은뼈 부러지고 잔뼈 으스러져,
272
얼게미 채궁이 진가리 새듯 아조 살살 샐 것이니,
276
허고 방자가 돌아가니 춘향이가 어리석어 잠깐 속은 둣이,
277
'글씨, 방자야 꽃이 어찌 나비를 따라간단 말이냐?
279
도령님전 안수해, 접수화, 해수혈 (雁隨海蝶隨花蟹隨穴)이라 여쭈어라.'
280
방자 충충 건너오니 도령님이 화가나서,
282
내가 춘향을 데리고 오라 허였지, 쫓고 오라더냐?'
284
그렁개 소인놈이 안 간다고 안 간다고 헝께,
285
도령님이 가라고 가라고 하시더니 춘향이가 욕을 담뿍 허옵니다.'
286
'그래, 춘향이가 무슨 욕을 허드냐?'
288
안주에다 접시에다 받쳐서 술 한 잔 잡수시고,
295
저 혹시 춘향이가 안수해 접수화 해수혈이라 아니허드냐?'
299
기러기는 바다를 따르고, 나비가 꽃을 찾는다.
300
그러니 날더러 저를 찾아오라는 뜻이니라.
301
방자야, 오늘 퇴령(退令) 후에 춘향집을 찾어갈 것이니
303
방자 좋아라고 손을 들어 춘향집을 가르치난디,
305
'저 건너 저 건너 춘향집 보이난디, 양양한 향풍이요,
306
점점 찾어 들어가면 기화요초난 선경을 가리우고,
307
나무, 나무 앉은 새는 호사를 자랑헌다
308
옥동도화만수춘(玉洞桃花 滿樹春)은 유랑(劉郞)의 심은 것과 현도관(玄都關)이 분명허고,
309
형형색색 화초들은 이행(異香)이 대로우고,
310
문 앞의 세류지(細柳枝)난 유사무사 양유사(有絲無絲楊柳絲)요,
311
들총측백 전나무는 휘휘칭칭 엉크러져서 담장밖에 솟아 있고,
312
수삼층 화계상의 모란, 작약, 연산홍이 첩첩이 쌓여난디,
313
송정죽림 두 사이로 은근히 보이난 것이 저것이 춘향의 집이로소이다.'
316
장원이 정결허고 송죽이 울밀허니 여기지절개로다.
320
혼은 벌써 춘향집으로 건너가고 등신 만 앉어 노리글로 뛰어 읽것다.
322
"수불원천리이래(叟不遠千里而來) 맹자견(孟子見) 양혜왕(梁惠王) 허신디 왕왈 허시니,
323
역장유이리오국호( 亦將有以利吾國乎)잇까?"
327
대학지도(大學之道)는 재명명덕(在明明德)허며
328
재친민(在親民)허며 재지어지선(在止於至善)이니라.
329
남창은 고군이오, 홍도넌 신부로다 홍도 어이 신부되리.
331
태고(太古)라 천황씨(天皇氏)는 이 쑥떡으로 왕했겄다.”
335
태고라 천황씨 때는 이 목덕으로 왕했단 말은 들었어도,
338
태고라 천황씨때는 선비들이 이가 단단허여 목떡을 자셨거니와
341
물씬 물씬한 쑥떡을 명륜당에 현몽허였느니라.”
342
“허허 도련님, 아 거 하나님이 들으면 깜짝 놀랄 거짓 말씀이오,”
344
“도련님 일곱 살 자신 배 아니신데 천자는 드려서 무엇 허시게요.”
345
“네가 모르는 말이로다 천자라 허는 것이 칠서의 본문이라.
346
새겨 읽으면 그 속에 천지우락장막이 다 들었느니라.”
347
도련님이 천자를 들여놓고 천자 뒤풀이를 허시난디,
349
“자시의 생천(生天)허니 불언행사시(不言行四時) 유유창창(悠悠蒼蒼) 하늘 ‘천(天)’,
350
축시의 생지(生地)허여 금, 목, 수, 화를 맡았으니 양생만물(養生萬物) 따 ‘지(地)’,
351
유현미묘(幽玄微妙) 흑정색(黑正色) 북방현무(北方玄武) 가물 ‘현(玄)’,
352
궁상각치우(宮商角徵羽) 중앙토색(中央土色)의 누루 ‘황(黃)’,
353
천지 사방이 몇 만 리 하루광활(廈樓廣闊 ) 집 ‘우(宇)’,
354
연대국조(年代國祖) 흥망성쇠(興亡盛衰) 왕고래금(往古萊今) 집‘주宙()’,
355
우치홍수(禹治洪水) 기자추연(箕子推衍) 홍범구주(洪範九疇) 넓을 ‘홍(洪)’,
356
전원이 장무호불귀(田園將蕪胡不歸)), 삼경이 취황 칠 ‘황(荒)’,
357
요순천지(堯舜天地) 장헐시구 취지하일(就之何日) 날 ‘일(日)’,
358
억조창생 격양가(擊壤歌) 강구연월(康衢煙月) 달 ‘월(月)’,
359
오거시서(五車詩書) 백가어(百家語) 적안영상(積案盈箱) 찰 ‘영(盈)’,
360
이 해가 왜 이리 더디진고 일중지책(日中則徐)의 지울 ‘책(昃)’,
361
이십 팔 수 하도 낙서 진우천강(辰宇天岡) 별 ‘진辰()’,
362
가련금야(可憐今夜) 숙창가(宿娼歌)라 원앙금침 잘 ‘숙(宿)’,
363
절대가인 좋은 풍류 나열준주(羅列樽酒) 버릴 ‘렬(列)’’,
364
의의월색(依依月色)삼경야(三更夜)의 탐탐정회(耽耽情懷) 베풀 ‘장(張)’,
365
부귀 공명 꿈밖이라 포의한사(布衣寒士)찰 ‘한(寒)’,
366
인생이 유수 같다. 세월이 절로 올 ‘래(來)’,
367
남방천리(南方千里) 불모지지(不毛之地) 춘거하래(春去夏來) 더위 ‘서(暑)’,
368
공부자(孔夫子) 착한 도덕 기왕지사 갈 ‘왕’,
369
상성(霜聲)이 추서방지(秋序方至)어 초목이 황락(黃落) 가을 ‘추(秋)’,
370
백발이 장차 오거드면 소년풍도(少年風度) 걷을 ‘수(收)’,
371
낙목한천(落木寒天) 찬 바람에 백설강산의 겨우 ‘동(冬)’,
372
오매불망(寤寐不忘) 우리 사랑 규중심처(閨中深處) 감출 ‘장(藏)’,
373
부용작약(芙蓉芍藥)의 세우중(細雨中)에 왕안옥태(王顔玉態)부를 ‘윤(潤)’,
374
저러한 고운태도 일생 보아도 남을 ‘여(餘)’,
375
이 몸이 훨훨 날아 천사 만사 이룰 ‘성(成)’,
376
이리저리 노니다가 부지세월(不知歲月) 해 ‘세()’,
377
조강지처는 박대 못 허느니 대전통편(大典通編)의 법중(法中) ‘율(律)’,
378
춘향과 날과 단둘이 앉어 법중(法中) ‘여(呂)’, 자로 놀아보자.
381
“이리오너라! 책방에서 무슨 소리가 저렇게 요란헌가,
385
사또께서 들으시고 빨리 사실하라 하나이다.”
388
우리집 어른은 연만허실수록 귀가 점점 더 밝으시는구나.
389
이애 네가 올라가서 네 거짓말 내 거짓말 합하여
391
북해곤(北海鯤)이 새가 되어 남명으로 날아가는 양을 보고
393
통인이 들어가 그대로 여쭈어 놓니 사또 대소허시며
398
퇴령소리 길게 나니 도령님이 좋아라고,
401
"청사초롱 불 밝혀들어라. 춘향집을 어서 가자.“
403
협로진간 너룬 길은 운간월색 희롱허고,
405
춘향집을 당도허니 좌편은 청송이요, 우편은 녹죽이라.
406
정하의 섰는 반송 광풍이 건 듯 불면 노룡이 굼니난 듯,
407
뜰 지키는 백두룸은 사람 자취 일어나서
409
뚜루루루 낄룩 징검 징검, 알연성이 거이허구나.
412
“이애 방자야, 어서 들어가서 내가왔다는 말이나 허여라.”
417
원수년의 달도 밝고, 내당연의 달도 밝다.
418
나도 젊어 소시절 남원읍에서 이르기를 ‘월매, 월매’ 이르더니,
419
세월이 여류(如流)허여 춘안노골다 되었다.
422
이러고 나오다가 방자허고 꽉 마주쳤겄다.
427
“아이고, 이 미련헌 자식아 도령님을 모시고 왔거던
429
아이고 도련님 귀중허신 도련님이 누지에 오시기는 천만 의외올시다.
431
도령님이 방으로 들어가서 좌를 틀어 앉은 후의 방안을 잠깐 살펴보니,
432
별로 사치스러운 것은 없으나 뜻있는 주련만 걸려 있겄다.
436
위수변 낙수질 허는 거동이 뚜렷이 걸려 있고,
437
서벽을 바라보니 상산사호(商山四皓) 네 노인이 바돌판을 앞에 놓고,
438
어떠한 노인은 흑기를 들고 또 어떤 노인은 백기를 손에 들고,
439
대마상패수 보랴허고 요만허고 앉어있고,
440
또 어떤 노인은 청여장 짚고, 백우선 손에 들고,
442
무안색으로 서있는 거동 뚜렷이 걸렸고나.
444
관우, 장비, 양장수가 활공부 힘써 헐제.
445
나는 기러기 쏘랴허고 장궁철전 먹여들고,
446
비정비팔의 흉허복실(非丁非八 胸虛腹實)허여,
449
깍지손을 뚝 떼논 듯 번개같이 나는 살이 살대 수르르르 떠들어가,
450
나는 기러기 절컥 맞어 돌아 떨어지는 거동 뚜렷히 걸렸고나.
451
북벽을 바라보니, 소상강 밤비 개고 동정호 달 오른디,
452
은은한 죽림 속에 백의 입은 두 부인이 이십 오현을 앞에 다가 놓고
453
스리렁 둥덩 타는 거동 뚜렷히 걸렸고나 서안을 살펴보니,
454
춘향이 일부종사 허랴허고 글을 지어 붙였으되,
455
대우춘종죽이요, 분향야독서라, 왕희지 필법 이로구나.
457
그 때에 도령님이 처음 일이라 말궁기가 맥혀 묵묵히 앉었을 제
458
알심있는 춘향 모친 도령님의 말궁기를 여를 양으로
460
귀중허신 도련님이 누지에 오셨는디 무얼 대접헌단 말이냐
462
향단이 술상을 드려놓으니 춘향 모친이 술 한 잔 부어들고
463
“도령님, 박주허나마 약주나 한 잔 드시지요.”
465
“오날 저녁 오는 뜻은 무슨 술을 먹으러 온 것이 아니라,
466
오늘 일기 화창하야 광한루 구경 나갔다가 춘향 노는 거동을 보고
469
춘향모 이말 듣고 일희일비로 말을 허는디,
471
“회동 성참판 영감께옵서 남원 부사로 오셨을 때,
472
일등 명기 다 버리고 나를 수청케 하옵기에
473
그 사또 모신 후에 저아를 아니 낳소?
474
이조참판 승파허여 내직으로 올라가신 후에
475
그 댁 운수 불길허여 염감께서 상사허신 후
476
내 홀로 길러내어 칠 세부터 글을 읽혀 사서가 능통허니,
479
상하불급의 혼인이 늦어가와, 주야 걱정은 되오나,
481
그런 말씀 마르시고 잠깐 노시다나 가옵소서.”
484
“불충불효허기 전에는 잊지 않을테니 어서 허락허여 주소.”
485
춘향모 생각허니 간밤의 몽조가 있난지라
486
꿈 ‘몽’자, 용 ‘용’자 분명 이 몽룡이가 배필이라 생각허고
488
“도령님 그러면 혼서지 사주단자 겸하여 증서나 한 장 써 주시옵서서.”,
491
천장지구(天長地久}에 해고석난(海枯石欄)이요,
494
춘향모 받어 간수허고 춘향 모친 술 한 잔 부어들고
496
“이 술은 경사주니 장모가 먼저 드시게.”
497
춘향 모친 술잔 들고 한숨 쉬며 허는 말이,
500
무남독녀 너 하나를 금옥같이 길러 내어,
501
봉황같은 짝을 지어 육례 갖춰 여우자 허였더니,
502
오늘 밤 이 사정이 사차불피(死且不避 ) 이리되니 이게 모두 네 팔자라,
505
칠십 당년 늙은 몸을 평생 의탁허잤더니 허망히 이리되니,
506
삼종지법을 좇자허면 내 신세를 어쩔거나.”
508
“장모, 오늘같이 즐거운 날 너무 설어워 말게.”
510
그때여 도령님과 춘향이도 이렇듯 반배를 허는디,
511
알심있는 춘향 모친 그 자리에 오래 앉어 있겄느냐.
513
춘향 모친과 향단이는 건넌방으로 건너 갔고나.
514
춘향과 도령님이 단둘이 앉었으니 그 일이 어찌 될 일이냐.
515
그날 밤 정담이야말로 서불진혜(書不盡兮)요, 언불진혜(言不盡兮)로다
516
하루가고 이틀가고 오륙 일이 되어가니,
517
나이 어린 사람들이 부끄러움은 멀리 가고 정만 담뿍 들어,
518
하루난 안고 누워 둥글면서 자연히 사랑가로 즐기난디,
520
만첩청산(萬疊靑山) 늙은 범이 살찐 암캐를 물어다 놓고
523
단산(丹山) 봉황이 죽실(竹實)을 물고,오동(梧桐) 속을 넘노난듯,
524
북해 흑룡이 여의주를 물고, 채운간(彩雲間}을 넘노난듯,
525
구곡청학이 난초를 물고 송백간의 넘노난 듯,
528
목락무변수여천(木落無邊水如天)의 창해같이 깊은 사랑,
529
삼오 신정 달 밝은 밤, 무산천봉(巫山千峰) 완월(玩月)사랑,
530
생전 사랑이 이러허면 사후 기약이 없을소냐?
531
너는 죽어 꽃이 되되, 벽도홍(碧桃紅) 삼촌화(三春花) 꽃이 되고,
532
나도 죽어 범나비되어, 네 꽃보고 좋아라고,
533
두 날개를 쩍 벌리고, 너울 너울 춤추거드면,
535
화로허면 접불래라 나비 새 꽃 찾아가니,
536
꽃되기 내사 싫소. 그러면 죽어 될 것 있다.
539
밤이면 이십 팔 수, 낮이면 삼삽삼천 그져 댕 치거드면
542
"그러면 죽어 될 것 있다. 너는 죽어 글자가 되되,
543
따‘지’, 따‘곤’, 그늘‘음’, 아내 ‘처’, 계집‘녀’자 글자가 되고,
544
나도 죽어 글자가 되되, 하늘 ‘천’, 하늘 ‘건’, 날 ‘일’, 볕 ‘양’, 지아비 ‘부’,
545
기특 ‘기’, 사내 ‘남’, 아들 ‘자’자 글자가 되어
546
계집 ‘녀’변에 똑같이 붙여서 좋을 ‘호’자로 놀아 보자.
548
“도령님은 어찌 불길하게 사후 말씀만 허시나이까?”,
549
“오 그럼 우리 정담도 허고 우리 업고도 한번 놀아보자.”
550
도련님이 춘향을 업고 한번 놀아 보는디,
555
이이 이 내 사랑이로다. 아매도 내 사랑아.
559
씨는 발라 버리고, 붉은점 움푹 떠 반간진수로 먹으려느냐?”
566
당동지지루지허니 외가지 단참외 먹으려느냐?
567
시금털털 개살구 작은 이 도령스는디 먹으랴느냐?"
571
아장 아장 걸어라, 걷는 태도를 보자.
575
“ 이애, 춘향아. 나도 너를 업었으니 너도 날 좀 업어다고.”
577
나는 도령님을 무거워서 어찌 업는단 말씀이요?”
578
"얘야. 내가 널다려 날 무겁게야 업어 달라더냐?
579
내 양팔만 네 어깨우에 얹고 징검징검 걸어다니면
580
그 속에 천지 우락 장막이 다 들었느니라.“
581
춘향이가 도령을 업고 노는디 파겁이 되어 마구 낭군자로 업고 놀것다,
583
“둥둥둥 내 낭군, 오호 둥둥 내 낭군.
585
도령님을 업고 보니 좋을 ‘호’자가 절로나.
586
부용 작약의 모란화 탐화봉접이 좋을시고.
587
소상동정칠백리 일생 보아도 좋을 ‘호’로고나.
590
“이애, 춘향아, 말 들어라. 너와 나와 유정허니 ‘정’자 노래를 들어라.
591
담담장강수 유유원객정, 하교불상송허니 강수의 원함정,
592
송군남포불승정, 무인불견송아정, 하남 태수의 희유정,
593
삼태육경의 백관조정, 주어 인정, 복없어 방정,
597
양인심정이 탁정타가 만일 파정이 되거드면 복통절정 걱정되니,
598
진정으로 완정허잔 그 ‘정’자 노래라.”
600
“아이고 우리 도령님 말씀도 잘도 허시네”
601
“어디 그것 뿐이랴. 또 ‘궁’자 노래 한번 들어 볼래?
603
너와 나와 둘이 있는데 무슨 노래를 못 부르겠느냐?
605
‘궁’자 노래를 들어라. ‘궁’자 노래를 들어라.
606
초분천지개탁후 웅정허다 창덕궁, 강 태공의 조작궁, 진시황의 아방궁,
607
진진허구나 홍문연을 들어간다. 번쾌자궁, 이궁 저궁을 다 버리고,
608
‘이애 춘향아, 이리 오너라. 밤이 깊어간다. 이리와.’
610
‘아서라 이 계집, 안될 말이로다. 어서 벗어라 잠자자.’
611
와락 뛰어 달려들어 저고리, 치마, 속적삼 벗겨,
612
병풍 위의 걸어 놓고, 덩뚱땅 법중 ‘여’로다.
613
초동 아이 낫자루 잡듯, 우악한놈 상투 잡듯, 양각을 취어드니,
615
이불이 벗겨지며 촛불은 제대로 꺼졋고나 병풍이 우당퉁탕.
617
이리 한창 요란헐 제 말하지 않더래도 알리로다.
620
호사다마라, 뜻밖에 사또께서 동부승지 당상하야 내직으로 올라 가시게 되었고나.
621
도령님이 부친따라 아니갈 수 없어 하릴없이 춘향 집으로 이별차 나가시는디,
623
점잔허신 도령님이 대로변으로 나가면서 울음 울 리 없지마는,
625
어안이 멍멍, 흉중이 답답허여 하염없난 서름이 간장에서 솟아난다.
626
두고갈까, 다려갈까 하서리히 울어볼까.
627
저를 다려 가자허니 부모님이 꾸중이요,
628
저를 두고 가자허니 그 마음 그 처사에 응당 자결을 헐 것이니,
629
사세가 난처로고나. 길 걷는 줄을 모르고 춘향 문전을 당도허니,
631
그때의 향단이 요염섬섬 화계상의 봉선화에 물을 주다
632
도령님을 얼른 보고 깜짝 반겨 일어서며,
634
전에는 오시랴면 담 밑에 예리성과 문에 들면 기침소리, 오시는 줄 알겄더니
635
오늘은 누구를 놀래시랴고 가만가만히 오시니까?”
636
그때의 춘향모친 도령님 드리랴고 밤참을 장만허다
637
도령님을 얼른 보고 손벽치고 일어서며,
638
“허허, 우리 사위 오시네. 남도 사위가 이리 어여쁠까?
639
밤마다 보건마는 낮에 못 보아 한이로세.
640
아 제자가 형제분만 되면 데릴사우 내가 꼭 정허제.
642
도령님 아무 대답없이 방문 열고 들어서니,
643
그때여 춘향이는 도령님을 드리랴고 금낭에 수를 놓다
644
단순호치(明眸皓齒) 반기허여 쌍긋 웃고 일어서며 옥수잡고 허는 말이,
646
편지 일 장 없었으니 방자가 병들었오?
648
발서 괴로워 이러시오? 사또께 꾸중을 들으셨오?
649
누가 내집에 다니신다 해담을 들으셨오?
651
뒤로 돌아가 겨드랑이에 손을 대고 꼭꼭꼭 찔러 보아도 몸도 꼼짝 아니허네."
653
춘향이가 무색허여 뒤로 물러나 앉으며,
654
“내 몰랐오, 내 몰랐오, 도령님 속 내 몰랐오.
655
도령님은 양반이요, 춘향 저는 천인이라,
656
잠깐 좌정허였다가 버리는게 옳다 허고 나를 떼랴고 허시는디,
658
편지 없네, 짝사랑 외즐거움이 오직 보기가 싫었것소.
659
듣기 싫어 하는 말은 더 허여도 쓸 데가 없고,
660
보기 싫어 허는 얼굴 더 보아도 병 되느니,
662
바드드득 일어서니 도련님 기가막혀 가는 춘향을 부여잡고,
664
네가 미리 속을 찌르기로 내가 미쳐 말을 못 허였다.
667
"속 모르면 말 말라니 그 속이 참 속이오,
668
꿈 속이오. 말을 허오 말을 허여 답답허여 못 살것오."
670
“이애, 춘향아 사또께서 동부승지 당상허여 내직으로 올라가시게 되었단다.”
671
“아이고 도령님 댁에는 경사났오 그려.”
673
“올체 인제 내 알았오, 도령님 한양을 가시면 내 아니갈까 염려시오?
674
여필종부라 허였으니 천 리 만 리라도 도령님을 따라가지.”
677
내아에 들어가 네 사정을 품고 허였더니,
678
미장전아이가 외방작첩하였다는 말이 원근에 낭자하면,
680
사당참례도 못 허고, 과거 한 장도 못해 보고,
685
“이별이야 될 수 있겠느냐마는 잠시 훗 기약을 둘 수 밖에는 없고나.”
687
어여쁜 얼굴이 누루락 푸루락 허여지며 이별 초두를 내는디,
690
“여보시오 도령님, 여보 여보 도령님!
691
지금 허신 그 말씀이 참말이요, 농담이요,
692
이별 말이 웬말이요 답답허니 말을 허오.
693
작년 오월 단오야의 소녀집을 찾어 와겨,
694
도령님은 저기 앉고 춘향 나는 여기 여기 앉어 무엇이라 말허였오?
696
상전이 벽해가 되고 벽해가 상전이 되도록 떠나살지 말자허였더니,
697
주일년이 다 못 되어 이별 말이 웬말이요?
698
공연한 사람을 상상 가지에 올려놓고 밑에서 나무를 흔드네 그려.
703
사생결단을 헐란다. 마나님을 오시래라.”
705
그 때에 춘향 모친은 아무 물색도 모르고
706
초저녁 잠을 실컷 자고 일어나 보니 건너
709
울음밑이 장차 길어지니 춘향 모친이 동정을 살피로 나와 보는디,
711
춘향 모친이 나온다. 춘향 모친이 나온다.
712
허던 일 밀쳐놓고 상초머리 행자초마 모양이 없이 나온다.
713
춘향방 영창 앞에 가만히 올라서 귀를 대고 들으니 정녕한 이별이로구나.
714
춘향 모친 기가막혀 어간마루 접적 올라 두 손뼉 당땅,
715
“어허 큰일났네. 우리집에 큰 일 났어.
716
한 초상도 어려운데 세 초상이 웬일이냐?”
717
쌍창문 번쩍 열고 방으로 뛰어 들어가 주먹쥐고 딸 겨누며,
719
내가 일상 말하기를 무엇이라고 이르더냐?
720
후회되기가 쉽 것기에 태과(太過)헌 맘 먹지 말고 여염을 세아려,
721
지체도 너와 같고, 인물도 너와 같은, 봉황같이 짝을 지어
722
내 눈 앞에 노는 양은 너도 좋고 나도 좋지야.
723
마음이 너무 도도허여 남과 별로 다르더니 오 그 일 잘되었다.”
725
“여보시오 도령님, 나하고 말 좀 허여 보세.
726
내 딸 어린 춘향이를 버리고 간다 허니
727
인물이 밉던가 언어가 불손턴가, 잡시럽고 흉하던가,
729
어느 무엇이 그르기로 이 봉변을 주랴시오?
731
칠거지악을 범찮허면 버리난 법 없난 줄을 도령님은 모르시오?
732
내 딸은 춘향 사랑헐 제, 잠시도 놓지 않고,
733
주야장천 어루다, 말경에 가실 때는 뚝 띠여 버리시니,
734
양유(楊柳)의 천만사(千萬絲) 들가는 춘풍을 잡아 매
735
낙화후 녹엽이 된들 어느 나비가 돌아와,
736
내 딸 옥같은 화용신 부득장춘, 절로 늙어 홍안이 백수되면,
738
다시 젊지 못하느니. 내 딸 춘향 임 그릴 제,
739
월청명(月淸明) 야삼경(夜三更) 참천의 돋은 달 왼 천하가 밝아
740
첩첩수심(疊疊愁心)이 어리어 가군의 생각이 간절.
741
초당전(草堂前) 화계상(花階上)의 담배 피워 입에 물고 이리 저리 거닐다
742
불꽃같은 시름, 상사, 심중에 왈칵나면,
744
한양 계신 우리 낭군, 날과 같이 그립든가?
746
뉘 년의 꼬염을 듣고 영 이별이 되려나?
747
아조 잊고 여영 잊어 일자수서가 돈절허면
749
방으로 뛰어 들어가 입은 옷도 아니 벗고,
750
외로히 벼개 우애 벽만 안고 돌아누워 주야 끌끌 울제,
751
속에 울화가 훨훨, 병 아니고 무엇이요?
752
늙은 어미가 곁에 앉아 아무리 좋은 말로 달래고 달래어도,
753
시름 상사 깊히 든 병 내내 고치던 못 허고 원통히 죽게되면,
754
칠십 당년 늙은 년이 딸 죽이고 사위 잃고,
755
지리산 갈가마귀 겟발 물어 던진 듯이,
756
혈혈단신 이 내 몸이 뉘를 의지허오리까?
757
이왕에 가실테면 춘향이도 죽이고 나도 죽이고, 향단이까지 마자 죽여,
758
삼식구 아조 죽여 땅에 묻고 가면 갔지 살려 두고는 못 가리다.
759
양반의 자세허고 몇 사람 신세를 망치려오. 마오, 마오, 그리 마오.”
764
내일 요여 배행 시에 신주는 내어 내 도포 소매에 모시고,
766
뉘가 요여안에 춘향이 태우고 간다 헐라던가?”
768
“아니고 어머니, 도령님 너무 조르지 마오.
769
오죽 답답허고 민망허여야 저런 망언을 허오리까?
771
도령님과 저는 밤새도록 울음이나 실컷 울고, 내일은 이별을 헐라요.”
774
“못 허지야, 못 허지야. 네 마음 대로는 못허지야.
775
저 양반 가신 후로 뉘 간장을 녹이려느냐?
776
보내여도 곽을 짓고 따라가도 따라가거라.
777
여필종부라 허였으니 너의 서방을 따라가거라. 나는 모른다.
778
너이 둘이 죽던지 살던지 나는 모른다 나는 몰라.”
781
춘향과 도령님과 단둘이 앉어 통울음으로 울음을 우는디,
786
도령님은 올라가면 명문귀족 재상가의 요조숙녀 정실얻고,
787
소년급제 입신양명 천운의 높이 앉어 주야 호강 지내실 제,
788
천리남원 천첩이야 요만큼이나 생각허리.
789
이제 가면 언제 와요? 올 날이나 일러주오.
790
금강산 상상봉이 평지가 되거든 오시랴오?
791
동서남북 너룬 바다 육지가 되거든 오시랴오?
795
용 가는 디는 구름가고, 범이 가는 디는 바람이 가니,
796
금일송군 임 가신 곳 백년소첩 나도 가지.”
799
오나라 정부라도 각분동서 임 그리워 규중심처 늙어 있고,
800
공문 한강 천리외의 관산월야 높은 절행 추월강산이 적막헌디,
801
연을 캐며 상사허니 너와 나와 깊은 정은 상봉헐 날 있을테니,
802
쇠끝같이 모진 마음 홍로라도 녹지 말고,
803
송죽같이 굳은 절개, 네가 날 오기만 기다려라.”
804
둘이 서로 꼭 붙들고 실성발광으로 울음을 운다.
806
그 때여 춘향이가 오리정으로 이별을 허러 나갔다 허되, 그럴 리가 있겄느냐?
807
내행차 배행시에 육방관속이 오리정 삼로 네거리에 늘어서 있는디
808
체면있는 춘향이가 퍼버리고 앉어 울 수가 없지.
810
꼼짝 달싹 못허고 저의 집 담장 안에서 은근히 이별 허는디,
812
와상우에 자리를 펴고 술상 채려 내어 놓으며,
813
“아이고 여보 도령님 이왕에 가실테면 술이나 한잔 잡수시요.
814
술 한 잔을 부어 들고 권군갱진일배주허니,
815
권할 사람 뉘 있으며, 위로 헐 이 뉘 있으리.
816
이 술 한잔을 잡수시고 한양을 가시다가 강수청청 푸르거든 원함정을 생각허고,
818
행장을 수습허여 부디 평안이 행차허오.”
820
“오냐, 춘향아 우지 마라. 너와 나와 만날 때는 합환주를 먹었거니와,
825
용산의 형제 이별, 서출양관무고인이라.
826
이런 이별 많건마는 너와 나와 당한 이별,
827
마날 날이 있을테니 설어말고 잘 있거라.”
828
도령님이 금낭 속에서 추월같은 대모석경 춘향 주며 허는 말이
830
장부의 맑은 마음 거울 빛과 같은지라 날 본 듯이 내어 보아라.”
832
저 씻던 옥지환을 바드득 빼어 내어 도령님전 올리면서,
833
“옛소, 도령님, 지환받으오, 여자의 굳은 절행 지환 빛과 같사오니,
834
이걸 깊이 두었다가 날 본 듯이 두고 보소서.”
835
피차 정표헌 연후의 떨어지지를 못 허는 구나.
837
내 행차 떠나는디 쌍교를 어루거니, 독교를 어루거니,
838
병마, 나졸이 분분헐제, 방자 겁을 내어 나귀 몰고 나간다.
839
다랑 다랑 다랑 다랑, 춘향 문전 당도허여,
840
“어허, 도령님 큰일났오! 내 행차 떠나시며 도령님을 찾삽기로
841
먼저 떠나셨다 아뢰옵고 왔아오니, 어서 가옵시다.
842
이별이라 허는 건 너 잘 있거라, 나 잘 간다,
844
웬놈의 이별을 이리 뼈가 녹두록 헌단 말이요. 어서 가옵시다.”
846
말은 가자고 네 굽을 치는디 임은 꼭 붙들고 놓지 않네.
847
도령님이 하릴없이 나귀 등에 올란지며,
849
장모도 평안이 계시오, 향단이도 잘 있어라.”
850
춘향이 기가막혀 도령님 앞으로 우루루루 달려들어,
852
또 한 손으로 도령님 등자 딛은 다리 잡고,
853
“아이고, 도령님, 여보 도령님, 날 다려가오.
855
여보, 도령님 날 다려가오. 쌍교도 싫고,
856
독교도 나는 싫소.걷는 말게 반부담지어서 어지렁 추렁청 날 다려가오.”
857
방자 달려들어 나귀정마 쥐어잡고 채질 툭 처 돌려세니,
858
비호같이 가는 말이 청산녹수 얼른 얼른 한 모롱 두 모롱을 돌아드니,
859
춘향이 기가 막혀 가는 임을 우두머니 바라보니, 달만큼 보이다,
861
십오야 둥근 달이 떼구름 속에 잠긴 듯이
864
“아이고 허망허네. 가네 가네 허시더니 이제는 참 갔고나.”
867
춘향이 하릴없이 향단으게 붙들리어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디,
869
향단으게 붙들리어 자던 침방 들어올 제,
870
만사가 정황이 없고 촉목상심 허는구나.
871
“여보아라, 향단아, 발 걷고 문닫어라.
872
춘몽이나 이루어서 알뜰한 도련님을 몽중에나 다시 보자.
873
예로부터 이르기를 꿈에 와 보이난 임은 신의없다 일렀으되
874
답답이 그럴진댄 꿈 아니며는 어히 보리. 천
875
지 생겨 사람 나고 사람 생겨 글자낼 제,
876
뜻 ‘정’자, 이별 ‘별’자는 어느 누가 내셨던고.
877
이별 ‘별’자를 내셨거던 뜻 ‘정’자나 내잔커나,
878
뜻 ‘정’자 내셨거든 만날 ‘봉’자를 내잔커나,
879
공방적적대고등허니 바랠 ‘망’자가 염려로구나.”
881
행국결월상심색허니 달만 비쳐도 임의 생각,
882
야우문령단장성에 비만 많이 와도 임의 생각.
883
추우오동엽낙시에 잎만 떨어져도 임의 생각,
885
이리로 가면서 뻐국 뻑뻑국 저리로 가면서 뻐국 뻑뻑국 뻑국
886
울어도 임의 생각이 절로 나네. 식불감미 밥 못먹고,
887
침불안석 잠 못 자니 이게 모두가 임 그리운 탓이로구나.
888
앉어 생각, 누워 생각, 생각 그칠 날이 전혀 없이,
889
모진 간장 불이 탄들 어느 물로 이 불을 끌거나.“
890
이리 앉어 울음을 울며 세월을 보내는 구나.
892
그 때의 구관은 올라가고 신관이 낫는디,
893
서울 자하골 사는 변 ‘학’자 ‘도’자 스는 양반이라.
894
호색허기 짝이 없어, 남원의 춘향 소식 높이 듣고
895
밀양 서흥 마다 허고 간신히 서둘러 남원 부사허였고나.
896
하루난 신연하인대령허여 출행날을 급히 받어 도임차 내려오는디,
901
모란새금 완자창 네 활개 쩍 벌려, 일등마부, 유랑달마 덩덩그렇게 실었다.
902
키 큰 사령 청창옷, 뒤채잽이에 힘을 주어 별연 뒤 따랐다.
903
남대문 밖 썩 나서 좌우 산천 바라 봐,
904
화란춘성 만화방창 버들잎 푸릇푸릇 백사, 동작 얼핏 건너
905
승방골을 지내어 남태령 고개 넘어 과천 읍에 가 중화허고 ,
906
이튿날 발행헐 제 병방, 집사 치레 봐라.
907
외올망건 추어 맺어 옥관자, 진사당줄 앞을 접어 빼어쓰고,
908
세모립의 금패 갓끈 호수립식 제법 붙여 꽤알탕건을 받쳐 써
909
진남항라 자락철릭 진자주대 곧 띠어, 전령패 비쓱 차고,
910
청파역마 갖은 부담, 호피 돋움을 연져 타고,
911
좌우로 모신 나졸, 일산 구종의 전후배,
912
태고적 밝은 달과 요순시 닦은 길로 뒤채잽이가 말을 타고 십 리허의 닿으다.
913
마부야! 니 말이 낫다 말고 내 말이 좋다 말고
914
정마 손에다 힘을 주어 양 옆에 지울쟎게 마상을 우러러 보며 고루 저었거라.
916
키 크고 길 잘 걷고, 어여뿌고, 말 잘 허고 영리한 저 급창,
917
석성망건, 대모관자, 진사 당줄을 달아 써,
918
가는 양태 평포립, 갑사 갓끈 넓게 달아 한 옆 지울게 비쓱 쓰고,
919
보라 수주 방패, 철륙, 철륙자락을 각기 접어 뒤로 자쳐 잡어매
920
비단쌈지천 주머니, 은장도 비쓱 차고 사날 초신을 넌짓 신고
921
저름저름 양유지 초록다님을 잡어 매고, 청창중 검쳐 잡고,
925
통영 갓에다 흰 깃 꼽고, 왕자 덜거리 방울 차, 일산의 갈라서서,
926
“에이 찌루거 이놈 저놈 게 안거라."
927
통인 한 쌍 채전립, 마상태 고뿐이로다.
928
충청양도를 지내어 전라 감영을 들어가 순상전 연명 허고,
929
이튿날 발행헐 제, 노구 바우, 임실 숙소, 호기있게 내려올 제,
930
오리정 당도허니 육방 관속이 다 나왔다.
931
질청 두목 이방이며, 인물 차지 호장이라.
932
호적차지 장적빗과, 수 잘 놓는 도서원, 병서, 일서, 도립사, 급창, 형방, 옹위허여
933
권마성이 진동허여 거덜거리고 들어간다.
934
천파총, 초관, 집사 좌우로 늘어 서고, 오십 명 통인들은 별연 앞의 배향허고,
935
육십 명 군로 사령 두 줄로 늘어서 떼기러기 소리허고,
936
삼십 명 기생들은 가진 안장, 착전립,
937
쌍쌍이 늘어서 갖인 육각, 홍철릭, 남전대 띠를 잡어 매고,
938
복장고 떡궁 붙여, 군악 젓대 피리소리 영소가 진동헌다. 수성장 하문이라!
941
청도 한쌍, 홍문 한쌍, 주작 남동각 남서각 흥초 남문 한쌍, 백호 현무 북서각
942
흑초 관원수 망원수 왕영관 오는 수 초현단 표미 금고 한 쌍,
943
호초 한 쌍, 라 한 쌍, 저 한 쌍, 바래 한 쌍, 세약 두 쌍,
944
고 두 쌍, 영기 두 쌍, 군로직열 두 쌍, 좌마독존이오,
945
난후친병, 교사 당보 두 쌍으로 퉁캥차르르르, 나누나, 지루나,
947
애꾸부야 수문 돌이 종종종 내문 돌에 같잡혀 무삼 실족 험노허나니,
950
“예이!”, “좌우차비 썩 금치 못 헌단 말이냐?”
951
척척 바우어, 하마포, 이삼승, 일읍 잡고 흔드난 듯,
958
좌기초 허신 후에, 삼행수 문안 받고,
959
행수군관 입회받고, 육방하인 현신후에,
960
도임상 물리치고, 자고 자고 나니 제 삼일 되었고나.
961
호장이 기생 점고를 허랴허고 영창 앞에 기안을 펼쳐 들고 차례로 부르난디,
963
오던 날 기창전의 연연옥골 설행이! 설행이가 들어온다.
964
설행이라 허는 기생은 인물 가무가 명기로서
965
걸음을 걸어도 장단을 맞추어 아장아장 들오더니
967
점고를 맞고 일어서더니 좌부진퇴로 물러난다.
970
행화라 허는 기생은 홍삼자락을 거듬거듬 흉당에 걷어 안고,
971
대명당 대들보 밑에 명매기 걸음으로 아장아장 찌이굿 거려
973
점고를 맞고 일어서더니 우부 진퇴로 물러나는구나.
975
“여봐라. 기생 점고를 이리 허다가는 몇 날이 될 줄 모르겠구나.
976
한꺼번에 둘씩 셋씩 마고 잡아 포개 불러드려라.”
977
호장이 멋이 있어 넉자 화두로 불러 드리난디,
979
“조운모우 양대선이, 우선유지 춘흥이 나오!”
981
“사군불견 반월이 독좌유황의 금향이 왔느냐!”
983
“남남기상의 봄바람 힐지항지 비연이 왔느냐!”
985
“팔월부용의 군자용 만당추수의 연화가 왔느냐!”
987
“주흥당사 벌매듣 차고 나니 금낭이, 사창의 비추었다.
990
“진주 명주 자랑마라. 제일 보배 산호주가 왔느냐!”
992
“광한루상 명월야의 사시장천 명월이 왔느냐!”
994
“독좌한강설 허니 천사만사 이화 육감삼현을 딱쿵 치니
995
장삼 소매를 더들어 메고 저정거리던 무선이 왔느냐!”
997
“단산오동의 그늘 속에 문왕 어루던 채봉이 왔느냐!”
999
“초산 명옥이, 수원 명옥이, 양 명옥이가 다 들어왔느냐!”
1003
“여봐라. 너의 고향 춘향이가 있다지?
1004
어찌 춘향이는 이 점고에 불참이 되었는고?”
1005
“예이, 춘향이는 본시 퇴기 월매의 딸이오나 기안착명이 안되었고,
1006
올라가신 구관 자제 도령님과 백년가약을 맺었기로 수절을 하고 있나이다.”
1008
춘향이가 수절을 허면 댁 마마께서는 장판방에 떡 요절을 헐 지경이로구나.
1010
다른 사람 같고 보면 사령이 나갈 일이로되,
1011
춘향이는 과거의 체면이 있는지라 행수지행을 보내는디,
1013
행수기행이 나간다. 행수기생이 나간다.
1014
대로변으로 나가면서 춘향 문전 당도허여 손벽을 땅땅 두다리며,
1015
“정열부인 애기씨, 수절 부인 마누라야.
1016
니만헌 정열이 뉘 없으며, 니만헌 수절이 뉘 없으랴.
1017
널로 하여금 육방이 손동, 각청 두목이 다 죽어난다.
1021
형님과 나와 무슨 혐의가 있어 사람을 부르면 조용히 못 부르고
1022
화젓가락 끝매디 틀 듯 뱅뱅 틀어 부르는가. 마소 마소 그리 마소.”
1027
이렇듯 말허여 놓고 동헌을 들어가서는 춘향을 먹기로 드는디
1030
어찌 자네가 나왔는가 허고 목을 비어 갔으면 갔지
1033
“어허, 그런 요망헌 년이 있단 말이냐.
1037
군로 사령이 나간다. 사령 군로가 나간다.
1038
산수털 벙거지 남일공단 안을 올려 날랭 ‘용’자 떡 붙이고
1039
늘어진 쇠사슬 허리 아래다가 늦게 차고 층층 거리고 나간다.
1047
옳다 그 제기 붙고 발기 갈 년 양반 서방을 허였다고
1048
우리를 보면 초리로 알고 댕혀만 좔좔 끌고
1049
교만이 너무 많더니 잘 되고 잘 되었다.
1050
사나운 강아지 범이 물어가고 물도 가뜩 차면 넘느니라.”
1051
두 사령이 분부듣고 안올림 벙치를 제쳐쓰고,
1052
소소리 광풍 걸음 제를 걸어 어칠 비칠 툭툭 거려 춘향 문전을 당도허여
1054
부르난 소리 원근 산천이 떠드렇게 들린다.
1055
“사또 분부가 지엄허니 지체말고 나오너라.”
1057
그때의 춘향이는 사령이 오는지 군로가 오는지 아무런 줄 모르고 울음을 누난디,
1059
“갈까부다. 갈까부다. 임 따라서 갈까부다.
1060
바람도 수여 넘고, 그릅도 수여 넘는,
1061
수진이, 날진이, 해동청, 보라매 다 수여 넘는 동설령 고개라도 임 따라 갈까부다.
1062
하날의 직녀성은 은하수가 막혔어도 일년 일도보련마는,
1063
우리님 계신 곳은 무슨 물이 막혔간디 이다지 못 보는고.
1065
임 계신 처마 끝에 집을 짓고 노니다가
1066
밤중이면 임을 만나 만단정회를 허여볼까.
1067
뉘 년의 고염을 듣고 여영 이별이 되랴는가.
1068
어쩔거나 어쩔거나 아이고 이를 어쩔거나."
1071
이렇듯 울고 있는데 향단이가 들어서며,
1073
“아이고 아씨 야단났오 장방청 사령들이 동동이 늘어서
1076
춘향이 그제서야 깜짝 놀래 나오난디,
1079
오날이 제 삼 일 점고날이라더니 무슨 야단이 났다부다.
1080
내가 전일에 장방청 번수에게 인심을 많이 잃었더니 혼초리나 받으리다.”
1081
제자다리 걸었던 유문지유사로 머리를 바드득 졸라매고 나간다, 나간다,
1084
이번 신연에 가셨드라더니 노독이나 없이 다녀오며,
1086
우수를 번뜻 들어 김 번수 손길을 부어 손길을 부여잡고
1087
좌수를 번뜻 들어 박 번수 손길잡고,
1088
"이리오, 이리와. 뒤집이라거 아니들어가세, 들어가세, 내방으로 들어가세”
1091
마음이 춘삼월 어름 녹듯 스르르르 풀렸고나. 놓아두소,
1093
춘향이 들어가 술 한상 채려내노니 한 잔씩 잘 먹었구나.
1095
사또께서 분을 내어 육방이 손동되었으니 자네가 아니 들어가고 보면
1096
우리 사령들의 신세가 말이 아닐세.”
1097
춘향이 이 말 듣고 돈 석냥씩 내어주며,
1099
내가 가기는 같이 갈 터이니 한때 주채나 하사이다.
1105
유전이면 가사귀란 말은 옛글에도 있거니와,
1106
자네와 우리가 한 문간 구실허며 유전이라니 웬말인가.
1107
들여 놓소 들여 놓소. 들여 노라면 들어 좋소.”
1109
앞으로는 반 뼘씩 나가고 제 앞으로는 오 뼘씩 바싹바싹 긁어 댕기것다.
1111
“아따 새 사또 첫 마수 부침이니 그대로 뒤에 차게.”
1112
두 사령들이 돈 한 뀌미씩을 들고 돈타령을 허는디,
1115
“돈바라, 돈바. 잘난 사람은 더 잘난 돈, 못난 사람도 더 잘난 돈,
1116
맹상군의 수레바퀴처럼 둥글둥글 생긴 돈,
1117
생살지권을 가진 돈, 부귀 공명이 붙은 돈,
1118
이놈의 돈아, 아나 돈아, 어디를 갔다가 이제야 오느냐.
1119
얼씨구나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네 얼씨구나 절씨구.”
1121
이리하여 춘향이 하릴 없이 사령 뒤를 따라 가는디,
1123
사령 뒤를 따라간다. 울며 불며 건너갈 제,
1125
어떤 사람 팔자 좋아 삼태육경, 좋은 집에 부귀 영화로 잘 사는디,
1126
내 신세는 어이 허여 이 지경이 웬일이여, 굴곡투식 허였느냐?
1127
부모 불효를 허였는가? 형제 있어 불목을 허였느냐?
1128
살인 강도 아니어던 이 지경이 웬일이여."
1129
종루를 당도허니 재촉 청령사령들이 동동이 늘어서서.
1131
산수털, 전립운월, 증자 채상모 날랠 ‘용’자 떡부치고,
1133
소소리 광풍 걸음 제를 걸어 어칠 비칠 툭툭거려 오느냐.
1134
남전대 띠라 파르르르, 장사대가 꼿꼿, 종루가 울긋불긋,
1137
제 낭군 수절헌 게 그게 무슨 죄가 되어 이 지경이 웬일이란 말이냐?”
1140
춘향이 상방에 들어가 아미를 단정히 숙이고 앉었을 제
1141
사또가 춘향이를 보더니 좋은 곳식 추듯 허는구나.
1144
계집이 어여뿌면 침어낙안헌단 말은 과히 춘줄 허였더니
1145
폐월수화 하던 태도 오날 너를 보았구나.
1146
설도문군보랴 허고 익주자사 자원허여 삼도몽이 꾼다더니,
1147
나도 네 소문이 하 장허여 밀양서흥 마다허고 간신히 서들러 남원 부하 허였제.
1149
녹엽성 음자만지가 아직 아니 되었으니,
1150
호주탄화 허던 말은 두 목지의 비허면 너에겐 다행이다.
1151
니가 고서를 읽었다 허니 옛 글을 들어보아라.
1152
촉국 부인은 초왕의 첩이 되고, 범신예양은 지백을 섬겼으니,
1153
너도 나를 섬겼으면 예양충과 같을지라.
1154
올라가신 구관 자제 도령님이 네 머리를 얹었기로 청춘공방 헐 수 있나.
1155
응당 애부가 있을테니, 관속이냐 한량이냐 건달이냐?
1159
“올라가신 도령님이 무심허여 설령 다시 안 찾으면,
1160
반첩녀의 본을 받어 옥창형영 지키다가 이 몸이 죽사오면
1161
황능묘를 찾아가서 이비혼령을 모시옵고,
1162
반죽지 저문 비와 창오산 밝은 달에 놀아볼까 허옵난디,
1163
관속, 한량, 애부말씀, 소녀에게는 당치 않소.”
1165
사또 이 말을 들으시고 기특타 친창후에 내어 보냈으면 관촌무사 좋을텐디,
1166
생긴 것이 하어여뿌니 절자(節字) 하나를 가지고 얼러보난디,
1168
내 분부 거절키는 간부 사정이 간절허여 필은곡절이 있는 터이니,
1169
네 소위 절절가통 형장 아래 기절허면 네 청춘이 속절없지.”
1170
춘향이 이 말 듣고 악정으로 아뢰난디,
1172
“여보, 사또님 듣조시오. 여보, 사또님 듣조시오.
1174
열녀 불경이부절을 본 받고쟈 허옵난디
1175
사또도 난시를 당하면 적하의 무릎을 꿇고 두 임금을 섬기릿가.
1176
마오 마오 그리 마오, 천기 자식이라 그리 마오.
1180
춘향의 머리채를 주루루루 감어 쥐고,
1189
뜰 밑 아래 두 줄 사령 벌떼 같이 달려들어,
1190
춘향의 머리채를 상전시정 연줄 감듯, 팔보 비단 감듯,
1191
사월 팔일 등대 감듯, 오월 단오날 그네줄 감 듯, 에후리 쳐 감아 쥐고
1198
저 년이 하 예쁘게 생겼기로 수청들라 허였더니,
1200
여봐라, 춘향이 다짐 받어 올려라.”
1204
부종관장지엄령허고 능욕존전 허였으니, 죄당만사라.”
1207
춘향이 붓대를 들고 사지를 벌벌벌벌 떠는디,
1208
죽기가 서러워 떠는 것도 아니오, 사또가 무서워서 떠는 것도 아니오,
1210
칠십 당년 늙은 노모 두고 죽을 일을 생각허여
1212
한 ‘일’자 마음 ‘심’자로 드르르르 긋고,
1214
붓대를 땅으다 내 던지더니 요만허고 앉었구나.
1216
급창이 다짐 받어 올리니 사또 보시고
1217
“네 년의 일심이 얼마나 굳은 지 어디 한 번 두고 보자.
1218
여봐라! 저 년을 동틀 위에 올려 매고
1219
바지 가래 훨씬 걷어 동틀다리 암양허여 묶은 후에,
1221
일호 사정 두었다가는 주장대로 찌를테니 각별히 매우 치렸다.”
1222
“예이! 저만헌 년을 무슨 사정을 두오리까?
1227
동틀 밑에다 촤르르르르 펼쳐 놓고 형장을 고르는구나.
1228
이놈도 잡고 늑근 능청, 저놈도 잡고 늑근거려
1230
사또 보는데는 엄명이 지엄허니 갓을 숙이어 대상을 가리고,
1233
내 솜씨로 넘겨치마. 꼼짝 꼼짝 말어라. 뼈 부러지리라.”
1236
딱 부러진 형장가지는 공중으로 피르르르 대뜰 위에 떨어지고,
1237
동틀 위에 춘향이는 조심스러워 아프단 말을 아니허고 고개만 빙빙 두르며
1239
일편단심 먹은 마음 일부종사 허랴는디,
1240
일개형장이 웬일이오? 어서 급히 죽여주오.”
1245
“이부불경 이 내마음, 이군불사 다르릿가?
1246
이비사적을 알았거던 두 낭군을 섬기릿가?
1252
"삼생가약 맺은 언약, 삼종지법을 알았거던
1253
삼월화류로 알지 말고 어서 급히 죽여주오.”
1255
“사대부 사또님이 사기사를 모르시오?
1256
사지를 찢드래도 가망 없고 무가내요.”
1258
"‘오마’로 오신 사또, 오륜을 밝히시오.
1259
오매불망 우리 낭군 오실 날만 기다리오.”
1261
“육부에 맺힌 마음 육시를 허여도 무가내요.”
1263
“칠척장검 높이 들어 칠 때마다 동강나도 가망 없고 무가내요.”
1265
“팔방부당 안될 일을 위력 권장 고만허고 어서 급히 죽여주오.”
1267
“구곡간장 맺은 언약 구사일생을 헐지라도 구관 자제를 잊으리까?
1270
“십장가로 아뢰리다. 십실 적은 고을도 충렬이 있압거던,
1271
우리 남원 너룬 천지 열행이 없으리까?
1272
나 죽기는 설챦으나 십맹일장 날만 믿는 우리 모친이 불쌍허오.
1273
이제라도 어서 죽어 혼비중천의 높이 떠서
1274
도령님 잠든 창전(窓前)의 가 파몽이나 허고지고.”
1278
삼십도 맹장허니 옥루화연 흐르난 눈물 진정헐 수 바이 없고,
1279
옥같은 두 다리에 유수같이 흐르난 피는 정반의 진정이라.
1280
엎졌던 형방도 눈물 짓고, 매질허던 집장 사령도 매놓고 돌아서며
1281
도포자락 끌어다 눈물 흔적 씻으면서 발 툭툭 구르며,
1282
“못 보것네, 못 보것네, 사람의 눈으로 못 보것네.
1283
삼십 년간 관문 출입 후의 이런 광경은 처음 보았네.
1284
내일부터 나가 문전 걸식을 허드래도 아서라, 이 구실은 못 허겄네.”
1287
아서라 춘향이 매맞는 거동 사람 눈으로 못 보것네.
1288
어린 것이 설령 잘못 헌들 저런 매질이 또 있느냐?
1289
집장 사령놈을 눈익혀 두었다가 삼문 밖에 나오면 급살을 주리라.
1290
저런 매질이 또 있느냐. 모지도다. 모지도다.
1291
우리 골 사또가 모지도다. 저런 매질이 또 있느냐.
1294
춘향을 큰 칼 씌워 장방청에 내쳐 놓니,
1295
그 때의 춘향 모친이 춘향이 매를 맞아 죽게 되었단 말을 듣고
1298
춘향 모친이 들어온다. 춘향 모친이 들어온다.
1299
춘향이가 죽었다니, 춘향이가 죽었다네.
1300
장방청 들어가니 춘향이 기절허여 정신없이 누었고나.
1301
춘향 모친 기가 막혀, 그 자리 엎드러지더니
1302
“아가, 춘향아! 이 죽엄이 웬일이냐?
1303
남원 사십팔면 중에 내 딸 누가 모르는가?
1304
질청의 상전님네, 장청의 나리님네, 내 딸 춘향 살려주오.
1305
제 낭군 수절헌 게 그게 무슨 죄가 있어 생죽엄을 시키시오.
1307
여광여취 울음울 제 목제비질을 덜컥 내리둥글 치둥굴며 죽기로만 작정을 허는구나.
1309
그때의 장방청 여러 기생들이 이 소문을 듣고 서로 부르며 들어오난디,
1311
여러 기생들이 들어온다. 여러 기생들이 들어온다. 서로 부르며 들어오난디,
1312
“아이고, 형님! 아이고, 아짐!, 동생!,
1313
춘향이가 매를 맞고 생죽엄을 당했다니,
1314
아이고 불쌍허고 아까워라. 어서 가서 청심환 갈아라.”
1315
끼리끼리 동지끼리 춘방지축 들어올 제, 또 어떠한 기생 하나는 선춤을 추면서 들어오는고나.
1317
“얼씨구나 절씨구 얼씨구나 절씨구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네, 얼씨구나 절씨구.”
1320
춘향과 너와 무슨 혐오가 있어 저 중장을 당했는디 춤을 추니 웬일이냐?”
1321
“너의 말도 옳거니와 이 내 말을 들어봐라.
1322
진주에 의암 부인 나고, 평양에 월선 부인 나고,
1323
안동 기생 일지홍, 산 열녀문 세워있어
1324
천추유전 허여있고, 선천 기생 아해로되,
1325
칠거 학문 들어있고, 청주 기생 화월이난 삼층각에 올랐으니,
1326
우리 남원 대도 관내 충렬이 업삽다가 춘향이가 열녀되어
1327
우리도 이번 남원 교방청에 현판감이 생겼으니 어찌 아니 좋을 소냐?
1328
노모 신세는 불쌍허나 죽을테면 꼭 죽어라.
1329
얼씨구나 절씨구나 좋구나 지화자 좋을씨구.”
1331
사정이난 춘향을 업고, 향단이는 칼머리 들고, 춘향 모친 여러기생들은 뒤를 따라 옥으로만 내려갈 제
1333
“아이고, 내 신세야. 아곡을 여곡 헐디,
1334
여곡을 아곡 허니 내 울음을 누가 울며,
1336
여장 아장 허니 내 장사를 누가 헐거나.
1339
네가 만일 죽게 되면, 칠십 당년 늙은 내가 누구를 믿고 살으라고”
1340
그렁저렁 길을 걸어 옥문간 당도허니,
1341
사정이 춘향을 옥에 넣고 옥쇠를 절컥 절컥 채워놓니
1342
십오야 둥근달이 떼구름 속에 잠겼구나.
1344
그때의 춘향 모친과 행단이는 여러 기생들 앞세워 집으로 돌아가고,
1345
춘향이 홀로 옥방에 앉아 신세 장탄으로 우름을 우난디,
1347
“옥방이 험탄 말은 말로만 들었더니 험궃고 무서워라.
1348
비단보료 어디 두고 헌 공석이 웬일이며,
1349
원앙금침 어디 두고 짚토매가 웬일이여?
1350
천지 생겨 나고 사람 생겨 글자낼 제,
1351
뜻 ‘정’자 이별 ‘별’자는 어느 누가 내셨던고?
1352
이 두 글자 내인 사람은 날과 백년 원수로다.”
1354
장주가 호접되고 호접이 장주되어 펴년히 날아가니
1355
반반혈루 죽림 속에 두견이 오락가락, 귀신은 좌림허고,
1357
황금대자로 새겼으되, ‘만고열녀 황능묘라 둥두렷이 걸었거날,
1358
이 몸이 활홀허여 문전의 배회헐 제,
1359
녹의 입은 두 여동이 문 열고 나오며 춘향 전 예 하여 여짜오되,
1360
“낭랑께서 부르시니 나를 따라 가사이다.”
1362
“미천한 사람으로 우연히 이 골에 와 지명도 모르난디
1363
어떠허신 낭랑께서 나를 알고 부르리까?”
1364
“가서 보면 알 것이니, 어서 급히 가사이다.”
1366
무하운창 높은 집에 백의 입은 두 부인이 문 열고 나오며 춘향 보고 반기허여,
1367
“네 비록 여잘망정 고금 사적 통달허여,
1368
요녀 순처 아황 여영 우리 형제 있는 줄은 너도 응당 알리로다.
1369
이 물은 소상강, 이 숲은 반죽이요,
1370
이 집은 황능묘라.” 동서묘의 앉은 부인 천만고 효부 열녀로다.
1371
네 절행이 장하기로 인간 부귀 시킨 후에 이리 다녀올까 허여,
1373
오날 너를 청하기는, 연약한 너의 몸에 흉사가 가련키로 구완차 불렀노라.
1374
이것을 먹으면 장독이 풀리고 아무 탈이 없으리라.”
1375
술 한잔, 과실 안주, 여동시켜 주시거늘 로아 앉어 먹은 후에,
1377
“너의 노모 기다리니 어서 급히 나가 보아라.”
1378
춘향이 사배 하직허고 깜짝 놀래 깨달으니,
1379
황능묘는 간 곳 없고 옥방에 홀로 누웠구나.
1380
“이럴 줄 알았으면 두 부인 모시고 황능묘나 지킬 것을 이 지경이 웬일이여.”
1383
춘향 형상 가련허다. 쑥대머리 귀신형용 적막옥비의 찬 자리에 생각나는 것은 임 뿐이라.
1384
보고 지고, 보고 지고, 보고 지고,
1386
서방님과 정별후로 일장서를 내가 못 봤으니
1387
부모 봉양 글 공부에 겨를이 없어서 이러는가.
1388
연이 신혼 금슬우지 나를 잊고 이러는가?
1389
계궁항아 추월같이 번 듯이 솟아서 비치고져.
1390
막왕막내 막혔으니 앵무서를 내가 어히 보면
1391
전전반칙 잠 못 이루니 호접몽을 꿀 수 있나.
1392
손가락의 피를 내어 사정으로 쳔지허고,
1393
간장의 썩은 눈물로 임의 화상을 그려볼까,
1394
이화일지춘 대우로 내 눈물을 뿌렸으니
1396
임의 생각 녹수부용채련여와 제롱망채에 뽕 따는 여인네들도
1398
날보다는 좋은 팔자. 옥문 밖을 못 나가니 뽕을 따고 연 캐려나.
1399
내가 만일에 도령님을 못 보고 옥중고흔이 되거드면
1400
무덤 근처 섯는 나무는 상사목이 될 것이요,
1401
무덤 앞에 있는 돌은 망부석이 될 것이니,
1402
생전사후 이 원통을 알아줄 이가 뉘 있드란 말이냐.
1407
그때의 도령님은 서울로 올라가 글공부 힘을 쓸 제,
1408
춘추사략 통사기, 사서삼경, 백가어를 주야로 읽고 쓰니,
1410
금수강산을 흉중의 품어두고 풍운월로를 붓끝으로 희롱헐 제,
1411
국가 태평허여 경과 보실 적의 이 도령 거동보소.
1412
장중의 들어가니 백설백목 차일장막 구름같이 높이 떳다.
1413
어탑을 양명허니 홍일산, 홍의 양산, 봉미선이 완연허구나.
1415
병조판서 봉명기, 동총관, 별렬군관, 승사각신이 늘어섰다.
1416
중앙의 어영대장, 선상의 훈련대장, 도감중군 칠백명,
1418
억조창생 만민들, 어악풍류 떡쿵. 나노나 지루나, 앵무새 춤추난 듯,
1420
도승지 모셔내어 포장우의 번 듯, 글제에 허였으되,
1421
‘일중과 월중윤 성중희 해중윤이라, 둥두렷이 걸렸거날,
1424
용지연의 먹을 갈아 당황모무심필 일필휘지 지어내어 일천의 선장허니,
1425
상시관이 글을 보시고 칭찬허여 이른 말이,
1426
“문안도 좋거니와 자자비점이오, 구구마다 관주로다.”
1430
정원 사령이 나와 청철릭 앞에 치고 자 세 치긴 소매를 보기 좋게 활개 처어,
1433
이렇듯 외난소리 장중이 뒤집혀 춘당대 떠나간다.
1434
선풍도골 이몽룡 세수를 다시 허고, 도포 떨어 다시 입고,
1435
정원 사령 부액허여 신래진퇴헌 연후,
1436
어주삼배 내리시니 황송히 받어 먹고 천은 배사 허고 계하로 나가실 제,
1437
머리우엔 어사화요, 몸에난 청포흑대, 좌수옥홀이요, 우수홍패로다.
1439
누하문 밖 나오실 제 청노새 비껴타고 장안 대도상으로 이리가락 저리가락,
1440
노류장화는 처처에 자잤는디, 고사당참알허고, 부모전 영화허니,
1441
세상에 좋은 것은 과거 밖에 또 있느냐.
1442
초입사 한림, 주사, 대교로 계실 적에,
1443
그 때 나라 경연들어 전라 어사를 보내시는고나.
1444
이 몽룡 입시시켜 봉서 한 벌 내어주시니 비봉에 호남이라.
1445
사책, 유척, 마패, 수의를 몸에 입고, 본댁을 하직허고 전라도로 내려간다.
1447
남대문 밖 썩 내달아 칠패, 팔패, 청패, 배다리, 애고개를 얼른 넘어,
1448
동작강 월강, 사근내, 미륵댕이, 골사그내를 지내어
1449
상유촌, 하유초느 대황교, 덕점거리,
1450
오무장터를 지내어 칡원, 소사, 광정, 활원, 모로원, 공주, 금강을 월강허여,
1451
높은 한질, 널테, 무넴이, 뇌성, 풋개, 닥다리, 황화정이,
1452
지아미 고개를 얼른 넘어 여산읍을 당도허였고나.
1454
그때의 어사또는 여산이 전라도 초입이라 서리역졸을 각 처로 분발헐 제,
1458
“너희들은 예서 떠나 우도로 염문허되,
1459
예산, 익산, 함열, 옥구, 김제, 타인으로 돌아,
1460
내월 십 오일 오시 남원 광한루로 대령하라!”
1462
“역졸! 너이는 예서 내려 좌도로 염문허되,
1463
고산, 금산, 무주, 용담, 진안, 장수, 운봉으로 돌아
1464
광양, 순천, 흥양, 낙안, 보성, 장흥, 강해남, 진수령을 넘어,
1465
영암, 나주, 무안, 함평, 화순, 동북, 광주로 염문허되
1466
국곡투식 허는 놈, 부모 불혀 허는 놈, 형제 화목 못허는 놈,
1467
술 먹고 취주 잡담, 피색의 범하는 자,
1468
낱낱이 적발허여 내월 십 오일 오시 광한루로 대령하라!”
1471
좌우도로 분발허고 어사 행장을 차리는고나.
1473
질 너룬 제량 갓에 갓끈을 달아 쓰고,
1474
살춤 높은 김제 만근, 당팔사 당줄을 달아서 뒷통나쟌케 졸라매고,
1475
수수한 삼배도복 분합대를 둘러 띄고,
1476
사날 초시느 길보신에 고운 때 묻은 세 살 부채,
1477
진짜 밀화 선초를 달아서 횡횡 두르며 내려올 제,
1478
어찌보면 과객같고, 또 어찌보면 공명을 하직허고
1479
팔도를 두루 다니면서 친구를 사귀랸 듯,
1482
광야 너룬 행로에는 인마는 뒤에 세우고 완보로 내려올 제,
1483
전라 감영을 들어가서 선화당 구경허고,
1484
남원 주인을 찾어가서 종두지미를 안 연후에
1485
임실읍을 얼른 넘어 노구 바위를 올라서서 보니 여기서부터는 남원땅이라.
1487
이떼는 어느 땐고 허니 오뉴월 농번시절이라.
1488
각댁 머슴들이 맥반맥주를 배불리 먹고 상사 소리를 맞어 가며 모를 심는디,
1490
“두리둥둥 두리둥둥 께갱매 깽매 깽매 어럴럴럴 상사뒤어.
1492
전라도라 허는 디는 신산이 비친 곳이라.
1493
저 농부들도 상사 소리를 먹으면서 가기 저정거리고 더부렁 거리네,
1495
한 농부가 썩 나서더니 모포기를 양 손에 갈라쥐고 엉거주춤 서서 먹이는고나.
1496
“신농씨 만든 쟁기, 고은 소로 앞을 내어 상하평 깊히 갈고,
1497
후직의 본을 받어 백곡을 뿌렸으니, 용성의 지은 책력 하시절이 돌아왔네.”
1498
“어여 어여루 상사뒤어, 어럴럴럴 상사뒤어.”
1499
이마 우에 흐르는 땀은 방울방울 향기 일고
1500
호미 끝에 이르난 흙은 댕기 댕기 댕기 호아금이로구나,
1502
“저 건네 갈미봉에 비가 묻어 들어 온다. 우비를 허리 두루고 삿갓을 써라.”
1504
“여보시오, 농부님네. 이 내 말을 들어보소.
1506
돋는 달 지는 해를 벗님의 등에 실코
1507
향기로운 이 내 땅에 우리 보배를 가꾸어 보세.”
1509
“선리건곤 태평시의 도덕높은 우리 성군
1510
강구미복 동요듣던 요임금의 성군일내.”
1512
“인정건 달 밝은 밤 세종대왕 노름이요,
1513
학창의 푸른 솔은 산신니므이 노름이요,
1514
오뉴월이 당도허니 우리 농부 시절이로다.
1515
패랭이 꼭지에 계화를 R보고서 마구잽이 춤이나 추어보세.”
1518
여보시오 여러 농부들 이렇게 심다가는 몇 날이 걸릴지 모르겄네,
1519
조금 자조자조 심어 봅시다. 그래 봅시다.
1522
“운담풍경근오천의 방화수류허여 전천으로 내려간다.”
1524
“여보소, 농부들 말 들어. 어화 농부들 말 들어. 돌아왔네, 돌아와.
1526
금년 정월달 망월달 선원사를 높이 떠 백공봉에 솟았고나.”
1528
“다 되었네 다 되어, 서마지기 논두렁이 반달 만큼 남았네.
1529
네가 무슨 반달이냐 초생달이 반달이로다.”
1531
“이 모 심어 다 끝내면 황황히 익은 후의 우걱지걱 거둬 들여
1532
가상질 탕탕허여 상위부모 하위처자 함포고복해 놀아보세”
1537
“전라어사가 내렸으면 옥중춘향이 살었구나.”
1539
“떠들어 온다 점심 바구니 떠들어 온다.”
1548
“풋고추 단 된장에 보리밥 쌀밥 많이 먹고.”
1551
“이러고 저러고 어쩌고 저쩌고 새끼 농부가 또 생긴다.”
1559
내가 좌상이오마는 댁의 거주 성명은 무엇이요?”
1560
“예, 이리 저리 떠도는 과객이 무슨 거주가 있으리오마는
1565
“그렇지 남원에는 전진방태가 많이 살것다.
1567
“우리네 농부가 무엇을 알 것이오마는,
1568
들은대로 말을 허자면 우리 고을은 사망이 물밀 듯 헌다 헙디다.”
1570
“예 말이 났으니 말이지, 원님은 주망이요,
1574
이리해서 우리 고을은 사망이 물밀 듯 헌다 헙디다.”
1575
“예, 이 고을 정사도 말이 아니구려.
1576
이왕에 말이 났으니 한 가지만 더 물읍시다.
1577
남원의 성 춘향이가 어찌 되었는지?”
1578
“예, 성 춘향이로 말헐 것 같을 지경이며넌
1579
구관 자제 도령님과 백년가약을 맺은 후에 지금 수절을 허고 있난디,
1580
뜻밖에 신관 사또가 내려와서 수청을 아니 든다 허여
1582
내일 본관 사또 생신 잔치 끝에 춘향을 잡아다 죽인다 헙디다.”
1583
어사 들으시고 깜짝 놀라 춘향 일이 급했다는 듯이
1584
농부들과 작별을 허고 한모롱이 돌아드니,
1586
그때의 춘향이난 옥방에 홀로 누워 혈루 편지 한 장 써서 지자 시켜 보내는구나.
1588
이팔 청춘 총각 아이가 시절가 부르며 올라온다.
1591
오늘은 가다가 어디가 자며, 내일은 가다가 어기 가서 잠을 잘거나.
1593
이날 이시로 가련마는 몇 날을 걸어서 한양을 가리.
1594
어이 가리너 어이 가리너. 어이가리.
1596
내 팔자도 기박허여 길품팔이를 허거니와 춘향 신세 더욱 가련허네,.
1597
무죄한 옥중 춘향이 명재경각이 되었난디,
1598
올라가신 구관 자제 이 몽룡씨 어이허여 못 오신고.”
1601
저 애가 춘향의 편지를 가지고 한양을 가는 방자놈이로구나.
1605
“아니 바쁘게 가는 사람 어찌 부르요?”
1606
“이애, 너 이리 좀 오너라. 너 지금 어디 사느냐?”
1607
“나요. 다 죽고 나 혼자 사는디 사요.”
1608
“허허, 그럼 너 남원 산단 말이로구나.”
1609
“허허, 그 당신 알아 마치기는 바로 오뉴월 쉬파리 똥 속이오.”
1610
“네 이놈!, 고얀 놈이로고. 그래, 너 지금 어디 가느냐?”
1611
“허허 말이 났응깨 말이지마는 남원에 성 춘향 편지 가지고 한양 묵은 댁에 가요.”
1612
“허허 그론 어것지기는 제족 이상이로고.
1613
너 한양 구관댁에 간단 말이로구나.”
1614
“허허, 그 당신 알아 마치기는 바로 칠팔월 귀뜨래미시 그려.”
1616
이애, 그럼 너 갖고 가는 그 편지 내가 좀 보면 안되겄느냐?”
1619
아니 남의 남자 편지도 함부로 못 헐텐디
1620
남의 여자 은서를 함부로 대로변에서 보잔 말이요?
1624
부공총총 설부진 허여 행인이 임발우개봉이라 허였으니,
1626
“허허 이사람 보소. 아 꼴불견일세.
1627
껍닥보고 말을 들어보니 문자 속이 기특허네 그려.
1628
허허 이 사람 내가 꼭 안 보여 줄라고 허였는디,
1629
당신 문자 속이하도 기특허여 보여주는 것이니 얼른 보고 봉해 주시오.”
1631
“네이놈!, 너는 저만치 한쪽에 가만히 있거라.”
1635
척서가 단절허여 약수 삼천리에 청조가 끊어지고.
1636
북해만리 홍안이 없어매라. 천리를 바라보니 망안이 욕천이요,
1638
이화에 두견 울고 오동에 밤비 올제,
1639
적막히 홀로 누어 상사일념이 지황천노라도 차한은 난절이라.
1640
무심헌 호접몽은 천 리에 오락가락, 정불지억이요. 비불자성이라.
1642
신관 사또 도임후의 수청들라 허옵기에,
1643
저사모피 허옵다가 모진 악형을 당허여, 미구에 장하지혼이 되겠아오니,
1644
바라건데 서방님은 길이 만종록을 누리시다가
1645
차생에 미친한을 후생에 다시 만나 이별 없이 사사이다.”
1647
편지 끝에다 ‘아’자를 쓰고, ‘아’자 밑에다 ‘고’자를 쓰고,
1649
평사 낙안 기러기 격으로 혈서를 뚝뚝뚝 찍었고나.
1650
“아이고, 춘향아. 수절이 무슨 죄가 되어 네가 이 지경이 웬일이냐?
1651
나도 너와 작별허고 독서당 공부허여 불원천리 에 왔는디,
1654
“아이고 춘향아, 이를 장차 어쩔거나."
1657
그때여 방자가 어사또를 몰라봤다 허되
1658
수 년 동안 책방에 모시고 있었으니 그럴 리가 있겠느냐.
1659
자세히 살펴보니 책방에 모시던 서방님이 분명쿠나. 그 일이 어찌 되겠느냐.
1664
대감마님 행차후의 옥체 안녕 허옵시며,
1665
서방님도 먼 먼 길에 노독이나 없이 오시었오?
1666
살려주오, 살려주오. 옥중 아씨를 살려주오.”
1669
내 모냥이 이 꼴은 되었으나, 설마 너의 아씨 죽는 것을 보것느냐.
1671
충비로다 충비로구나. 우리 방자가 충비로고나.”
1673
어사또 생각허기를 저 애가 관물을 오래 먹어 눈치가 비상헌지라,
1674
천기누설 될까허여 편지 한 장 얼른 써서,
1676
이 편지 가지고 운봉 영장전 빨리 올리고 오도록 하여라.”
1678
편지 내용인 즉은 요놈을 멕이기는 잘 멕여주되 며칠 붙들어 놓란 내용이었다.
1681
박석치를 올라서서 좌우 산천을 바라보니,
1682
산도 옛 보던 산이요, 물도 옛보던 물이로구나.
1683
대방국이 노던 데가 동양물색이 아름답다.
1685
하향도리 좋은 구경 반악이 두 번 왔네,
1686
광한루야 잘 있으며, 오작교도 무사터냐?
1687
광한루 높은 난간 풍월 짓던 곳이로구나.
1688
저 건너 화림 중의 추천미색이 어디를 갔느냐?
1689
나삼을 부여잡고 누수 작별이 몇 해나 되며,
1690
영주각이 섰는데는 불개청음 허여 있고,
1691
춤추던 호접들은 가는 춘풍을 아끼난 듯,
1692
벗 부르난 저 꾀꼬리 손의 수심을 자아낸다.
1693
황혼이 승시허여 춘향 집을 당도허니,
1694
몸채는 꾀를 벗고 행랑은 찌그러졌구나.
1695
대문에 붙인 입춘 충성 ‘충’자란 내 손으로 부쳤더니
1696
가온데 ‘중’자는 바람에 떨어지고 마음 ‘심’자만 뚜렷히 남었구나.
1698
어사도 문전에 은신 허여 가만히 동정을 살펴보니,
1700
그때의 춘향 모친은 후원의 단을 묻고
1701
북두칠성 자야반의 촛불을 돋워 켜고 정화수를 받쳐 놓고,
1702
“비나니다. 비나니다. 하나님 전 비나니다.
1704
전라 감사나 전라 어사로나 양단간의 수의허여
1707
모친에게는 효녀요, 가장(家長)으게는 열녀 노릇을 허난디,
1708
효자 충신 열녀부터는 하나님이 아시리라.
1710
비는 것도 오날이요, 지성신공도 오날 밖으는 또 있느냐?”
1711
향단이도 서라라고 정화수 갈아 받쳐 놓고 그 자리 법석 주저앉어,
1712
“아이고 하나님 아씨가 무슨 죄가 있소.
1713
명천이 감동허여 옥중 아씨를 살려주오!”
1716
네 눈에서 눈물이 나면 내 눈에서는 피가 난다.”
1717
향단이난 마님을 붙들고 마님은 향단이 목을 부여잡고
1718
서로 붙들고 울음을 울고 붙들고 말리고 울음을 우는 모냥
1722
“허허, 내가 어사허는 것이 선영 덕으로만 알았더니
1723
여기 와서 보니 우리 장모와 향단이 비는 정성이 절반이 넘는구나.
1725
저 늙은이 성질에 상추쌈을 당할 것인 즉,
1731
“아이고 얘, 향단아. 너의 아씨 생목숨이 끊게 되어 그러는지
1733
바깥에서 오뉴월 장마에 토담 무너지는 소리가 나는구나.
1738
“마님 어떤 거지같은 분이 마나님을 잠깐 나오시래요.”
1741
너 나가서 마님 안 계신다고 따 보내라.”
1742
“여보시오. 우리 마님 안 계신다고 따 보내래요.”
1744
뭐 그렇게 딸 것 없이 잠깐 나오시라고 여쭈어라.”
1745
“마님 그 사람이 따라는 말까지 다 들었으니
1746
뭐 그렇게 딸 것 없이 잠깐 나오시래요.”
1748
네가 그사람 더러 따라는 말까지 다 했응께 갈 리가 있겄느냐?”
1749
춘향 모친 이 말을 듣더니 형세가 이리 되니
1751
홧김에 걸인을 쫓으러 한번 나가 보는디,
1754
물색도 모르는 저 걸인. 알심 없는 저 걸인,
1755
남원 부중 성내성외 나의 소문을 못 들었나?
1756
내 신수 불길허여 무남독녀 딸 하나,
1757
금옥같이 길러 옥 중의 넣어두고 명재경각이 되었는디
1760
“어허 늙은이 망령이여. 어허 늙은이가 망령.
1761
동냥을 못 줄망정 박쪽조차 깨난 격으로
1763
경세우경년허니 자네 본 지가 오래여.
1764
세거인두백허니 백발이 완연허니 자네 일이 허 말 아닐세.
1765
내가 왔네, 내가 왔어. 어허, 자네가 날 몰라?”
1767
해는 저물어지고, 성부지 명부지 헌디,
1772
성안성외 많은 이 가, 어느 이간 줄 내가 알어.
1775
아림아림 멋도 있는 동문안 이 한량이 아닌가?”
1776
“아아아 아니 그 이 서방 아니로세.”
1778
“허허, 장모가 망녕이여, 우리 장모가 망녕.
1779
장모 장모, 장모라 해도 날 몰라?”
1781
남원읍내 오입쟁이들 아니꼽고 녹녹허네.
1782
내딸 어린 춘향이가 양반 서방을 허였다고 공연히 미워허여
1783
내 집 문전을 지나면서 인사 한마디도 아니허고,
1785
'여보게, 장모’ 장모라면 환장헐 줄로.
1787
“어허, 늙은이 망녕이여. 우리 장모가 망녕이여.
1788
장모가 나를 모른다고 허니 거주 성명을 일러 주지.
1789
서울 삼청동 사는 춘향 낭군 이 몽룡. 그래도 자네가 날 몰라?”
1790
춘향 모친 이 말을 듣고 우르르르 달려 들어 사위 목을 부여 안고,
1791
“아이고, 이게 누구여, 아이고 이 사람아 어찌 그리 더디오나.”
1793
"왔구나. 우리 사위 왔어! 반갑네, 반가워.
1795
가더니마는 여영 잊고 편지 일장이 돈절키로
1796
야속허다고 일렀더니 어디를 갔다가 이제 와.
1797
하늘에서 뚝 떨어졌나, 땅에서 불끈 솟았나?
1798
하운이 다기봉터니 구름속에 쌓여왔나?
1799
고아풍이 대작터니 바람결에 날려 와?
1800
춘수는 만사택이라더니 물이 깊허서 이제 왔나.
1801
뉘 문전이라고 주저만 허며 뉘 방이라고서 아니 들어오고
1803
들어가세, 들어가세, 내방으로만 들어가세."
1805
“이애, 향단아, 한양 서방님 오셨다. 어서 나와 인사드려라.”
1807
“소년 향단이 문안이요. 대감마님 행차후의 기체안녕 허옶시며,
1808
서방님도 먼 먼 길에 노독이나 없이 오시었오?
1812
내 모냥이 이 꼴은 되었으나 설마 너의 아씨 죽는 꼴을 보겄느냐?
1815
“이애, 향단아 그만 울고 시장허다. 밥 있으면 한 술 가져오너라.”
1817
“얘. 향단아, 어서 찬수 장만허고, 더운 밥 지어라.
1820
“수년 동안 사위 얼굴을 그리웠더니 사위 얼굴 좀 봐야겄네.”
1823
“자네는 대장부라 속이 넉넉허여 그러지마는
1824
나는 밤낮 주야로 기다리고 바랬으니 사위 얼굴 좀 봐야것네.”
1827
“잘 되었네, 잘 되었네. 열녀 춘향 신세가 잘 되었네.
1828
책방의 계실 때난 보고 보고 또 보아도 귀골로만 생겼기에
1829
믿고 믿었더니 믿었던 일이 모두 다 허사로구나.
1830
백발이 휘날린 년이 물마를 날이 없이
1831
전라 감사나 전라 어사나 양단간에 되어오라
1832
주야 축수로 빌었더니 어사는 고사허고 팔도 상걸인 되어 왔네.”
1834
정화수 그릇을 번뜻 들어 와그르르 탕탕 부딪치니 시내 강변이 다 되었네.
1835
춘향 모친 기가 막혀 그 자리에 주저 앉어
1836
“죽었고나, 죽었고나 내 딸 춘향이는 영 죽었네.
1837
아이고, 이 일을 어쩔거나 이 일을 장차 어쩔거나.”
1841
그러고 나 시장허니 밥 있으면 한술 주소.”
1844
자네 줄 밥 있으면 내 옷에 풀해 입고 살겄네.”
1847
“여보, 마나님 그리 마오. 아씨 정곡아니 잊고
1848
불원천리 오셨는디 대면박대는 못 허리다.”
1849
부엌으로 들어가 먹던 밥, 제리 짐치, 냉수 떠 받쳐 들고,
1851
더운 진지 지을 동안 우선 요기나 허사이다.”
1853
어사또가 밥을 먹는디 춘향 모친 미운 체를 허느라고 휘머리로 따르르르 허니
1854
장단을 맞춰가며 밥을 먹는디 꼭 이렇게 먹는 것이었다.
1856
원산 호랑이 지리산 넘듯. 두꺼비 파리 채듯,
1857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중 목탁 치듯, 고수 북치듯, 뚜드락 뚝딱
1860
춘향모가 어사또 밥 먹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 보더니
1864
“내가 책방에 있을 때는 용미봉탕에 잣죽을 먹어도
1867
그냥 무쇠토막을 끓어 넣어도 춘삼월 어름녹듯 허내 그려.
1868
근디, 아까 시장헐 때는 아무 생각도 없더니
1869
오장단속을 허고 나니 춘향 생각이 나네. 춘향이 어디 있는가?,”
1871
“아까 후원에 단 묻고 살려 달라 빌던 것은 춘향이가 아니고 무엇인가?”
1873
“서방님, 바루나 치거든 가사이다.”
1874
“오라! 바루를 쳐야 되느냐, 거참 절차 많구나.”
1877
초경, 이경, 삼사오경이 되니 바루난 뎅 뎅 치난디
1878
옥루는 잔잔이라. 향단이는 등롱을 들고
1879
춘향 모친은 미음 그릇을 들고 걸인 사위는 뒤를 따라 옥으로 내려갈 제,
1881
인적은 고요허고 밤 새 소리는 부욱부욱
1882
도채비들은 휘이휘이, 바람은 우루루루 쇠 지동치듯 불고,
1883
궂은비는 퍼붓더니, 사방에서 귀신소리가 들리난디
1885
아이고 아이고. 춘향모 더욱 기가 막혀
1886
“아이고 내 신세야 아곡을 여곡 헐띠,
1887
여곡을 아곡 허니 내 울음을 누가 울며,
1888
아장을 여장 헐띠, 여장을 아장 허면 내 장사를 누가 헐거나?”
1894
“아이고, 이 원수놈들. 또 투전허러 갔구나.
1896
그때의 춘향이난 내일 죽을 일을 생각허여
1897
칼머리 베고 누웠다가 홀연히 잠이 들어,
1898
비몽사몽간에 남산백호가 옥담을 뛰어 넘어 들어와 주홍입 적,
1899
으르르르 어형! 깜짝 놀래 깨달으니 무서운 마음이 솟구치고,
1900
목에서 땀이 주루루루, 가슴이 벌렁벌렁,
1902
모친인 줄은 모르고 귀신소리로 짐작허고,
1903
“야이 못쓸 귀신들아! 나를 잡어 갈랴거던 조르지 말고 잡아가거라.
1905
나도 만일에 이 옥문을 못 나가고 이 자리에서 죽게가 되면
1907
아이고 아이고 다리야. 아이고 허리야.”
1915
“오다니 뉘가 와요. 한양서 편지가 왔오?
1918
“편지나 가마가 왔으면 오죽이나 좋겄느냐마는
1919
네가 이리 죽어가면서도 방방 허는 한양 이서방인지 이남방인지
1923
서방님이 오셨거던 나의 손에 잡혀 주오.
1926
어제 꿈에 보이던 임을 생시 보기 의외로세.
1928
애를 끓어 보이던 임을 생시에나 다시 보자.
1930
형장 맞은 다리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1931
아픈 것을 참노라고 아이고 아이고 다리야. 아이고 허리야. "
1932
뭉구적 뭉구적 나오더니 옥문설주 부여 잡고 바드드드득 일어서며
1933
“아이고, 서방님 어찌 이리 더디 왔오?
1934
영천수 맑은 물에 소부 허유와 놀다 왔오,
1935
상사 사호 네 노인과 바돌을 뒤다가 이제 왔오,
1936
책방에 계실 때는 그리도 곱던 얼골, 헌헌장부가 다 되었네.”
1938
“아이고, 저렇게 잘되어 온 것을 보고도
1941
잘되어도 내 낭군, 못 되어도 저의 낭군,
1942
고관대작 내사 싫고 만종록도 나는 싫소.
1943
어머님이 정한 배필 좋고 글코 웬 말씀이오.”
1944
어사또 이 모양을 보더니 옥문 틈으로 손을 넣어 춘향 손을 부여잡고
1946
부드럽고 곱던 손결 피골이 상접이 되었으니 네가 이게 웬일이냐”
1947
“서방님 나는 내 죄로 이러거니와 귀중허신 서방님이 이 모냥이 웬일이오.”
1949
“내일 본관 사또 생신 끝에 나를 올리라는 영(令)이 내리거던 칼머리나 들어주고,
1950
나 죽었다 하옵거던 서방님이 싹군인 체 달려들어
1951
나를 업고 물러 나와 우리 둘이 인연 맺던 부용당에 날 뉘히고
1953
세 번 불러 축원허고 향단이난 머리 풀려 내 앞에 곡 시키고
1954
서방님 헌옷 벗어 천금지금으로 덮어주고
1955
나를 묻어주되 정결헌 곳 찾어가서 깊히 파고 나를 묻어주고
1956
수절원사춘향지묘라 여덟 자만 새겨주시면 아무 여한이 없겠네다.”
1959
내일 날이 밝거드면 상여를 탈지 가마를 탈지 그 일이야 뉘가 알랴마는,
1960
천붕우출혈이라, 솟아날 궁기가 있난 법이니라.
1965
“얘, 향단아 서방님 모시고 집으로 돌아가 편히 쉬시게 허여라.”
1967
어사또 기가 막혀 “이애, 춘향아 오늘 밤만 견디어라,
1968
내일 보자. 어허 참 기맥힌다.” 춘향 모친 옆에 섰다.
1969
“야, 춘향아 너 그 말 알아 듣겄느냐?
1970
한양서 여기까지 어어어 얻어 먹고 왔다 그 말이다.”
1971
집으로 돌아올 제 춘향모가 오뉴월 단술 변허듯 허넌디.
1974
“나, 집없네.”, “아니 아가 그 집은 뉘집이여?”
1977
“이애, 향단아. 너는 마나님 모시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1978
내 처소는 객사 동대청 널널헌 집이 내 처소다.”
1981
이튿날 평명 후의 본관의 생신잔치 광한루 차리난디, 매우 대단허구나.
1982
주란화각은 벽공의 솟았난디 구름같은 차일장막 사면에 둘러치고,
1983
울능도 왕골 세석, 쌍봉수복, 각색 완자, 홍수지로 곱게 꾸며 십간대청 맞게 펴고,
1984
호피방석, 화문보료, 홍단백단, 각 색 방석 드문드문 드문드문 놓였으며,
1985
물색 좋은 청사휘장, 사면에 둘러치고
1986
홍사우통, 청사초롱, 밀초 꽃아 연두마다 드문드문 걸었으며,
1987
용알북춤, 배따라기, 풍류헐 각 생 기계, 다 등대 허였으며,
1988
기생, 과객, 광대고인 좌우로 벌렸난디, 각 읍 수령이 들어온다.
1990
경영장 운봉 영장, 승지당상 순천 부사,
1991
연치 높은 곡석 현감, 인물 좋은 순창 군수, 기생치리 담양 부사,
1992
자리호사 옥과 현감, 부채치리 남평 현령,
1993
무사헌 광주 목사,미포걱정 창평 현령,
1995
별연 앞의 권마성, 포꼭 뛰어 폭죽소리, 일산이 팟종자 배기듯 허고,
1997
통인수배가 벌써 저의 원님 찾느라고 야단이 났고나.
1998
광한루 마루 위의 일자로 좌정허여 헌량을 헌 연후의
1999
낭자 헌 풍류 속 선녀같은 기생들 왼갖 춤 다 출제,
2000
부시난 촛불혜여 향풍의 휘날리고 우계면 불러갈 제
2004
그때여 어사또는 잠행하던 그 복색으로 광한루 마루 위에 우루루루 들어서니,
2008
“아뢰어라 아뢰어라, 급창 통인 아뢰어라.
2009
지내는 과객으로 좋은 잔치 만났으니 주효나 얻어먹고 가자 여쭈어라.”
2011
사령들이 달려들어 옆 밀거니 등 밀거니
2012
“어라 어라 놔라 나도 가난한 양반이다.
2015
운봉이 보니 의복은 남루허나 행색이 다른지라,
2016
“네 운봉 하인 게 있느냐. 저 양반 이리 모셔라.”
2018
“어허, 하마터면 내가 먼저 당할 뻔.
2020
저 수석의 앉으신 분이 아마 주인이신 가 보우 그려.”
2021
액화를 당하랴거던 대답을 잘 헐 리가 있겄느냐?
2022
“젊은 것이 얻어 먹을랴며는 한쪽에 가만히 앉아
2023
주는 대로 얻어 먹고 갈 일이지, 인사는 무슨 인사?”
2025
오늘 주인의 경연이라신디 날짜를 하도 잘 받었기에 그 인사 말씀이요.
2026
여보, 운봉. 내 앞에도 술상 하나 갖다주오.”
2027
어사또 앞에 술상을 드려놨으되 소박허기 작이 없것다.
2029
“주박성효(酒薄盛肴)요, 관후입권(罐後入勸)이란 말이 있난디,
2030
아 내 상을 보고 저 상을 보니 내 속에서 불이 나오 그려.”
2032
“우리는 먼저 오고 손님은 후에 오셔,
2033
불시에 차리느라 조끔 부족한가 보오 그려.
2034
잡수고 싶은 것 있거던 내 상에서 같이 잡숩시다.”
2035
“운봉도 동시객이니 허실 염려 아니오.
2036
저 주인상허고 바꿔 먹었으면 좋겠오.”
2039
아름다운 기생들은 겹겹이 끼어 앉어 권주가 장진주(將進酒)로 엇걸어져 노닐 적에,
2041
“여보 운봉, 저 기생 하나 불러 내 앞에 권주가 한 꼭대기 시켜 주오.”
2042
그 중의 기생 하나 운봉의 영을 거역치 못하여 부득히 나와 술을 권하는디,
2044
“진실로 이 잔을 잡수시면 천 만 년이나 빌어 먹으리다.”
2047
너보다도 이 고을 예방이 더 죽일 놈이로구나."
2049
“자, 이년이 날다려 이 술을 먹고 천 만 년이나 빌어 먹으라 허였으니
2050
이 술을 나 혼자 먹고 보면 십대나 빌어 먹어도 다 못 빌어 먹겠으니,
2051
좌중에 같이 나누어 먹고 우리 당대씩만 빌어 먹읍시다.”
2053
이것은 관장의 노름이 아니라 바로 과갹의 노름이 되었겄다.
2058
우리 음영 한 수씩 지어 일후의 유적이 되게 허되,
2059
만일 못 짓는 자 있으면 곤장을 때려 출송허기로 헙시다.”
2066
어사또 앞에 당도허여 일필휘지하여 얼른 지어 운봉 주며,
2067
“과객의 글이 오죽 허것오마는 자 보시고 고칠 데가 있으면 고치시오.”
2068
운봉이 그 글을 보시더니 풍월축 잡든 손이 흔들흔들, 곡성이 보시더니
2069
낯빛이 쎄놀놀 허여지며, 글을 읊으난디,
2072
“금준미주는 천일혈이오, 옥반가효는 만성고라,
2073
촉루낙시 민루낙이요, 가성고처원성고라."
2075
"아이고 이 글 속에 큰 일 들었오. 첫서리 맞기 전에 어서 떠납시다.”
2078
뜻밖의 역졸 하나 질청으로 급히 와서
2081
본관의 생신잔치 갈 데로 가라 허고 출도채비 준비헐 제,
2082
공방을 불러 사처를 단속, 포진을 펴고 백포장 둘러라.
2083
수노를 불러 교군을 단속, 냄여줄 고치고 호피를 연저라.
2084
집사를 불러 흉복을 채리고, 도군도 불러 기치를 내어라.
2085
도사령 불러 나졸은 등대, 급창이 불러 청령을 신칙허라.
2086
통인을 불러 거행을 단속, 육지기 불러, 너난 살진 소 잡고 대초를 지어라.
2088
별감, 상 많이 내어, 비장 청령청 착실히 보아라.
2089
공양 빗 내어 역인마공궤, 도서원 불러 결부를 세세 조사케 차려라.
2090
도군을 불러 군총을 대고 목가 성책 보아라.
2091
수형방 불러 옥안 송사 탈이나 없느냐.
2092
군기불러 연야가 옳으냐. 문서있고 수삼 아전 골라내어 사령빗 내어라.
2093
예방을 불러 기생 행수에게 은근히 분부허되,
2094
어사 또 허신 모양, 서울 사신 양반이라 기생을 귀히허니,
2095
읍사희도 탈이 없이 착실히 가르처라.
2096
이리 한참 분발헐 제, 이 때에 곡성이 일어서며,
2097
“내가 이리 떨린 것이 아마도 오날이 초학 직날인가 싶으요. 어서 가봐야 것소.”
2099
“내가 시골을 오래 다녀 초학방문을 잘 알지요.
2100
아 거 소하고 입을 맞추면 꼭 낫지요.”
2101
“그 약 중난 허오마는 허여 보지요.”
2102
“수이 찾아 갈 것이니 의원 대접이나 착실히 허오.”
2104
“나도 고을 일이 많은 사람이라 부득이 왔삽더니 어서 가봐야 것소.”
2107
“아니, 무엇허러 또 오겠오? 상강의 관왕묘 제관이나 당허면 오지요.”
2108
“공문일을 알 것이요? 내일 또 올란지?”
2109
이 말은 남원 봉고랑 말이로되, 본관이 알 수가 있겄느냐.
2111
“나도 처의 병이 대단허여 부득이 왔압더니 어서 가봐야것오.”
2112
본관 말할 틈 없이 어사또가 주인 노릇을 허기로 드난디,
2113
“영감이 소실을 너무 어여삐 허신가보오 그려.”
2114
“소실을 사랑치 않는 사람 어디 있겄오?”
2115
“혹 이 좌중에도 있난지 어찌 알아요?
2116
수이 찾어 갈 것이니 환성정 노름이나 한번 붙여주오.”
2117
순천 생각에 어사또가 와서 출도헐가 염려되어
2119
“내가 관동어사를 지냈기로 팔경누대를 많이 보았으나
2123
“어허, 이리 허다가는 이 사람들 굿도 못 보이고 다 노치것다.”
2124
마루앞에 썩 나서서 부채 피고 손을 치니,
2125
그 때의 조종들이 구경꾼에 섞여 섰다
2127
육모방맹이 둘러 메고 소리 좋은 청파역졸 다 모아 묶어 질러,
2130
두 세 번 외난소리ㅡ 하늘 덥쑥 무너지고 땅이 툭 꺼지난 듯,
2131
수 백 명 구경꾼이 독담이 무너지듯 물결같이 흩어진다.
2134
각 읍 수령 정신 잃고 이리저리 피신헐 제,
2136
수배들은 갓 쓰고 저으 원님 찾고 통인은 인궤잃고 수박등 안았으며,
2137
수저집 잃은 칼자 피리줌치 빼어 들고,
2138
대야 잃은 저 방자 세수통을 망에 놓고,
2139
유삼통 잃은 하인 양금 빼어 짊어지고,
2140
일산 잃은 보종들은 우무 장사 들대 들고,
2141
부대 잃은 복마마부 왕잿섬을 실었으며,
2142
보교 벗은 교군들은 빈줄만 메고 오니 원님이 호령허되,
2143
“웠다, 이 죽일 놈들아! 빈 줄만 매고 오면 무엇 타고 가자느냐?”
2145
사당이 모냥으로 두 줄 우에 다리 넣고 그냥 업고 행차 허옵시다.”
2146
“ 아이고, 죽일 놈들아! 내가 앉은뱅이 원이드냐?”
2147
밟히나니 음식이요, 깨지나니 북장고라.
2148
장고통이 요절 나고, 북통을 차 구르며, 뇌고소리 절로 난다.
2149
저금 줄 끓어지고, 젓대 밟혀 깨어지고,
2150
기생은 비녀 잃고 화젓가락 질렀으며,
2151
취수는 나발 잃고 주먹대고 흥앵흥앵,
2153
이마가 서로 닿쳐 코 터지고 박 터지고 피죽죽 흘리난 놈,
2154
발등 밟혀 자빠져서 아이고 아이고 우난 놈,
2160
유월 염천 그 더운디 핫저고리 개가죽을 등에 얹고
2161
자리 말아 옆에 찌고 슬슬슬슬슬슬슬 기여 들어오니,
2163
“아이고 나는 오대 독신이요! 살려주오!”
2164
“이 놈! 오대 독신이 쓸 데가 있느냐.”
2166
보이난 놈마다 어찌 때려 놓았던지 어깨쭉이 무너졌고나.
2168
그때의 어사또는 선대감께서 부리시던 하인들이니 어찌 두호가 없겠느냐.
2171
동헌에 들어가 좌기허여 사면을 살펴보니
2173
이행을 불러들여 본관의 탐람지욕 낱낱이 다짐받고,
2175
“다른 죄인은 다 석방허고 춘향 하나만 불러드려라.”
2178
사정이 옥쇠를 모도아 들고 덜렁거리고 나간다.
2179
삼문 밖의 잠긴 옥문을 쨍그렁청 열떠리고,
2181
수의 사또 출도 후에 다른 죄인은 다 석방을 허고 너 하나만 올리란다.”
2185
“옥문 밖에나 삼문 밖에나 걸인 하나 아니 섰오?”
2186
“걸인 캥이는 얻어 먹는 사람도 없네 이 사람아.
2187
아 이통에 누가 누군 줄 안단 말인가?
2190
갈매기는 어디 가고 물드난 줄을 모르고,
2191
사공은 어디 가고 배 떠난 줄을 모르고
2192
우리 낭군 어디 가시어 내가 죽는 줄을 모르신고?”
2193
사정에게 붙들리어 동헌을 들어서니, 나졸들이 달려들어
2200
일개 천기의 여식으로 본관을 능욕허고
2201
수청을 아니 드는 것은 죄당만사무석 이려니와
2202
잠시 잠깐 지내가는 수의방수도 못 들것느냐 아뢰어라.”
2204
춘향이 이 말을 듣고 사지를 벌벌벌벌 떨며 아뢰난디,
2205
“수의 사또라 하오니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2206
이제 장하의 죽을 년이 무슨 말을 못 허오리까.
2208
민간 표백과 선악을 구별허로 다니시는 어사옵지,
2209
한 낭군 섬기랴는 춘향 잡으러 오신 사또시오? "
2214
홍로의 묻은 불로 사르거든 어서 사르시고,
2215
칠척 검 드는 칼로 어서 급히 죽여 주시면,
2216
혼비홍행 둥둥 떠서 우리 서방님을 찾어 갈라요.
2217
송장 임자는 문 밖의 섰으니 어서 급히 죽여주오!”
2220
“열열열, 열녀로다. 이리 오너라! 행수 부르라!”
2221
행수가 들어오니 금낭의 지황을 내어주며,
2222
“이걸 갖다 춘향 주고 얼굴을 들어 대상을 살피라 허여라.”
2224
“춘향이 이걸 자세히 보고 얼굴을 들어 대상을 살피라 허시네.”
2226
춘향이 지환을 받어들고 보니 이별시 도령님께 드렸던 지환이 분명쿠나.
2227
“아이고, 내 지환아. 어디를 갔다가 이제 나를 찾어 왔느냐.”
2230
어젯 밤 옥문 밖에 걸인으로 되어 왔던 서방님이 분명쿠나.
2233
춘향이 일회일비로 두 눈에 눈물이 듣거니 맺거니
2239
기처불식이란 말은 사기에도 있지마는 내게조차 그러시오.
2241
요만큼만 통정을 허였으면 마음 놓고 잠을 자지,
2242
자니간 밤 오늘까지 살어 있기 뜻밖이네.
2245
두 손으로 무릎 짚고 바드드득 일어서며,
2247
지화자 좋을씨구. 황쇄수쇄를 끌렀으니 종종종 걸음도 걸어 보고,
2248
동헌 대청 너룬 뜰에 두루두루 다니며 춤을 추고
2249
남문전 달이 솟았으니 벽공가로만 놀아보세.
2250
외로운 꽃 춘향이가 남원 옥 중 추절이 들어 떨어지게가 되었더니
2251
동헌의 새봄이 들어 이화춘풍이 날 살렸네.
2252
얼씨구나 좋구나. 지와자자 좋구나. 지화지화 자자 좋을씨구.
2253
우리 어머니난 어디를 가시고 이런 경사를 모르신고.”
2262
얼씨구나 절씨구,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네.
2263
얼씨구나 절씨구 남원 부중의 여러분들 나의 한 말 들어보소.
2264
내 딸 어린 춘향이가 옥 중에 굳이 갇혀 명재경각이 되었더니,
2265
동헌의 봄이 들어 이화춘풍이 내 딸을 살리니 어찌 아니 좋을손가,
2267
부중생남 중생녀 나를 두고 이름이로구나.
2268
얼씨구 절씨구 남원 부중 여러분들 나에 발표 들어보소.
2270
춘향같은 딸을 나서 서울 사람이 오거들랑 묻도 말고 다 사위삼소!
2275
어사헌 줄은 알았으나 천기누설 될까 허여 내가 짐짓 알고도 그리허였제,
2277
아무리 그리헌들 자기 장모를 어이허리.
2279
본관이 아니거던 내 딸 열녀가 어데서 날거나.
2281
칠 년 유리옥에 갇힌 문왕 기주로 돌아갈 제,
2282
반가운 마음이 이 같으랴. 영던전 새로 짓고 상량문이 제격이요,
2283
악양루 중수 후의 풍월귀가 제 격이요,
2284
열년 춘향이 죽게 되니 어사 오기가 제격이로다.
2286
이 궁덩이를 두었다가 논을 살거나 밭을 살거나 흔들대로만 흔들어 보자.
2287
얼씨구나 절씨구 얼씨구나 아아 얼씨구 절씨구 지와자 좋네 얼씨구나 절씨구.”
2289
그때의 어사또는 동헌에서 일을 다 보시고,
2290
춘향 집으로 들어가서 오육 일 간을 정담을 허였구나.
2293
너를 다려 가기 사처에 부당허니 내가 먼저 올라가서 너를 올라오게 헐 테이니,
2294
너의 노모와 향단이 다리고 올라오도록 허여라.”
2297
그때의 어사또는 이 고을 저 고을 다니시며
2298
출두노문 돈 연후의 서울로 올라가서 어전에 입시허여 세기 별단 올리오니
2299
우에서 칭찬허사 나라의 깊은 걱정 경이 나가 막고 오니 국가의 충신이라.
2301
남원의 춘향 내력 종두지미를 품고허니 춘향을 올려다가 열녀로 표장허여
2302
정열부인을 봉허시고 운봉은 승직허여 좌수사로 보내시고,
2303
남원 고을 백성들은 일시 세역을 없앴으니 천천 만만세를 부르더라.
2304
어화 여러 벗님네들 춘향가를 허망히 듣지 말고
2305
열녀 춘향 본을 받어 천추유전(千秋遺傳) 허옵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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