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24.10.20
|
|
|
|
【문화】
포천에 효자로 유명한 오백주 선생님이 있었다. 그 분은 평소 지극한 효성으로 소문이 자자한 분이었다. 하루는 선생의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집으로 오는데, 거의 저녁 무렵에서야 축석고개에 닿았다. 날은 어두워졌으나 더는 머무를 수가 없어서 고개길을 넘어오는데, 커다란 바위에 호랑이 한 마리가 길을 막고 앉아 있었다. 깜짝 놀란 선생은 두려움을 무릅쓰고 큰소리로 호령하였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
|
|
|
|
2024.10.22
|
|
|
|
【문화】
한 동네에 사랑하는 청춘남녀가 있었다. 그런데 이 둘은 사랑하는 마음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그래서 그 여자하고는 답례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여자가 시집을 가게 되었다. 여자가 시집을 간 후, 이 남자는 여자를 너무 사모해서 병이 들었다. 병이 더욱 깊어서 남자는 어쩔 수 없이 다 죽게 되었다. 남자의 부모가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
|
|
|
|
2024.10.24
|
|
|
|
【문화】
옛날에 궁예 왕이 왕건한테 쫓기게 되었을 때의 일이다. 그 당시에 궁예 왕의 첫 도읍지가 철원이었는데 왕건에게 쫓겨나서 관인면 ‘고남산’이라는 곳으로 도망을 쳤다. 왕건이 그 곳에까지 쳐들어오자 울음산으로 도망을 갔다. 도망을 가다가 배가 고파서 그 산에서 국수를 먹고 갔는데, 그 때문에 그 산봉우리에 ‘국수봉’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
|
|
|
|
2024.10.24
|
|
|
|
【문화】
궁예가 왕건과 최후의 전투를 할 때, 현등산에 천연의 요새를 짓고 대전하였다. 왕건이 반년간이나 치열하게 공격을 해서 결국 궁예가 현등산에서 죽었다고 한다. 그런데 철원에 궁예의 무덤이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철원에서 금강산 들어가는 철도 옆에 ‘삼방역’이라는 조그마한 역이 있다. 그런데 그 역 앞에는 돌담이 하나 있고, 그것이 바로 궁예의 무덤이라고도 한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
|
|
|
|
2024.10.21
|
|
|
|
【문화】
누구에게나 쥐통이라는 통증이 올 수 있는데 이 동네에 들어서면 쥐통이라는 것이 없어졌다. 그 이유인즉 이러하다. 이 동네의 형세를 일러 사제형국이라 하는데 촛대봉 쪽은 뱀의 형국이요, 그 건너는 부엉이가 내려다보는 형국이요, 괭이산 쪽은 괭이 같은 형국이다. 그 안에서 서로 쥐를 잡아먹으려고 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
|
|
|
|
2024.10.24
|
|
|
|
【문화】
한 아주머니의 꿈 속에서 부처가“난 여기서 못 살겠다. 개울 건너에 있는 굴에다 데려다 달라.” 고 말했다. 그 꿈에서 깬 후 이 아주머니가 꿈 속에서 부처가 말한 장소에 가 보니 정말로 돌 모양의 부처가 있었다. 굉장히 큰 돌부처였다. 그래서 그 돌부처를 안고 개울을 건너려고 하는데 비가 온 뒤라 개울물이 많이 올라 차 있었다. 어찌할 줄을 모르고 있는데, 갑자기 개울물이 ‘쫘악’ 갈라졌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
|
|
|
|
2024.10.24
|
|
|
|
【관광】
옛날 운악산 밑에 ‘아들바위’와 ‘딸바위’가 있었다. 하나는 집채만한 큰 바위이고, 다른 하나는 조그만 바위였다. 동네 아낙네들이 나무를 하고 오다가, 돌 하나를 던져서 ‘아들바위에 앉으면 아들을 낳고, 딸바위에 앉으면 딸을 낳는다’고 한다.(完)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
|
|
|
|
2024.10.22
|
|
|
|
【문화】
옛날에 어떤 마을에서 남자가 나라에 충성을 하러 가면, 그 후에 그 부인이 어디론가 사라지곤 했다고 한다. 어떤 남자가 자기 부인이 사라질까 두려워서, 비초황을 하나씩 나눠 갖고 누에실에 물을 들여 각자의 발목에다 묶어 놓았다. 그런데도 그 여자가 석 달 만에 사라져 버렸다. 남자는 부인을 찾아다니다가, 부인 발목에 묶어둔 실이 걸린 너러바위를 보게 되었다. 이 너러바위는 밤이면 구멍이 뚫려 괴물인 돼지가 드나드는 것이었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
|
|